[깊어지는 사드 보복]현대차, 반복되는 공장 가동중단에 신음
수정 2017.09.09 09:30입력 2017.09.09 09:30
베이징현대 창저우공장 전경[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 "판매가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생산이 멈춰서야 되겠습니까. 공장은 공장대로 돌고 판매는 또 판매대로 길을 찾아야 하지요. 그런데 자꾸 이렇게 공장이 멈추니까 회사 이미지가 안 좋아질까 걱정이 됩니다."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중국 생산라인의 반복되는 가동중단 상황을 놓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 판매에도 영향이 끼치지 않을까하는 걱정의 목소리다.
현대차는 이번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장을 세웠다, 다시 가동했다를 반복해 제조업 회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중국 합작법인 베이징현대의 창저우 공장 이야기다. 창저우 공장은 가동 중단 사흘 만인 지난 7일 재가동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완벽히 해결되지 않고서였다.
이 공장은 지난 5일부터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독일ㆍ중국 합작 부품사가 대금 지급 지연을 이유로 납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공기여과장치인 에어인테이크를 납품하는 창춘커더바오는 지난달 31일까지 밀린 대금을 주지 않으면 납품을 중단할 것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베이징현대가 대금 결제를 하지 않으면서 창춘커더바오는 공급을 끊었다.
현대차는 대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더 애가 탔다. 베이징현대는 현대차와 중국 베이징자동차가 50대 50의 지분 구조로 합작한 회사인데 생산과 재무 등 사업부를 각각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가 나눠 맡고 있다.
재무 쪽을 베이징자동차가 전담하고 있는 게 독이었다. 현대차 독자적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도 같은 이유로 현대차 중국 공장 4곳(베이징 1~3공장, 창저우 4공장)이 올스톱됐다가 협의 끝에 이튿날 재개된 바 있다.
이번 일은 거래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사들이 부품 공급을 거부하면서 발생한 사안이지만 본질적으론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보복 문제가 있다. 이것이 해결될지 않으면 언제든 가동중단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베이징자동차는 올 상반기 실적부진을 이유로 현대차에 한국 협력사를 중국계 협력사로 교체할 것을 주문하는 등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부품사와 협의 끝에 일단 가동에 들어가고 계속해서 대금 문제를 논의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금 지급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부품사와 계속 협의 중"이라며 "하루빨리 정상체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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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을 위해 꿇은 무릎, 특수학교를 위해 꿇은 무릎
수정 2017.11.06 09:04입력 2017.09.09 08:30
"구로까지 통학하는 아이들 생각해 달라" 무릎 꿇은 학부모들
맞 무릎 꿇은 '특수학교 절대 불가' 주민들…학교용지에 한방병원 설립 고집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특수학교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특수학교 설립 찬성을 호소하고 있다.(출처=유튜브 영상 "'강서구 무릎 꿇은 학부모들' 왕복3시간 특수학교 설립 호소" 캡쳐)[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지역주민과 학부모들 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보다 가까운 곳에 자녀를 통학시키고 싶은 특수학교 학부모와 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들이고 싶은 지역 주민들이 서로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서울 강서구 탑산초 체육관에서 지난 5일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는 가양2동 옛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주민들의 의견이 맞선 상태에서 서로를 향해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이들의 눈높이는 맞춰지지 않았고, 의견 차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장애인단체 및 학부모단체, 강서구 주민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장애학생 학부모 장모씨는 특수학교 설립 부지에 한방병원 설립을 요구하는 주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양보를 부탁했다. 매일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구로구의 특수학교로 통학하는 자녀를 위해서였다.
장 씨를 포함해 50여명의 학부모가 무릎을 꿇자 지역주민 10여명도 반대편에서 특수학교 대신 국립한방의료원을 설치할 것을 요구하며 무릎을 꿇었다.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양측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로 토론회가 끝났다.
(출처=유튜브 영상 "'강서구 무릎 꿇은 학부모들' 왕복3시간 특수학교 설립 호소" 캡쳐)주민들은 강서구에는 이미 특수학교가 있을 뿐더러, 마곡단지에도 대체 부지가 있는 만큼 옛 공진초 부지에는 특수학교가 아닌 한방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강서구 지역이 조선시대 어의(御醫) '허준'의 출생지인 만큼 한방병원을 지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이유도 들었다.
하지만 옛 공진초 부지는 서울교육청 소유이며 학교를 설립해야 하는 학교용지다. 반면 마곡단지 쪽 부지는 서울시 소유의 공원용지다. 공원용지에 학교를 지으려면 학교용지로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서울시가 마곡 단지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적도 없다. 주민들의 주장이 막무가내식 지역이기주의로 비쳐지는 이유다.
주민들이 이처럼 특수학교 설립 반대 뿐만 아니라 한방병원 설립을 강력히 주장하는 불씨는 김 의원이 제공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4월13일 총선을 앞두고 '강서 르네상스'라는 공약을 내세우며 가양2동에 국립한방의료원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 공약을 위해 서울시교육청과 사전에 어떠한 협의도 하지 않았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김성태 의원이 한방의료원 공약을 내세우기 전에 서울교육청과 상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자리를 찾은 조 교육감은 이를 두고 주민들의 반복된 한방병원 건립요구를 "김성태 의원이 만든 가공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주민들의 모습에 대해 극심한 지역이기주의라며 여론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양측이 무릎을 꿇은 영상이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진 뒤 지난 7일에는 장애인 부모들을 지지하는 서명운동이 시작됐을 정도다.
서울 동작구의 특수학교인 서울삼성학교 인근에 거주하는 박모(59)씨는 "다들 부모고 자식이 있을 법한데도 자식을 위한 마음을 이해 못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무릎까지 꿇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며 "특수학교가 들어선다고 그렇게 큰 손해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한방병원이 들어선다고 해서 그렇게 큰 이득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 학부모의 마음에 못을 박으며 갈등할 문제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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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여의도', 왕실의 목장에서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수정 2017.09.11 13:56입력 2017.09.09 08:00
"너나 가져라"는 지명 유래는 잘못 알려진 속설
왕실 목장이던 '너벌섬'에서 비행장, 금융과 방송의 중심지로 변모 여의도 야경모습(사진=아시아경제DB)서울 여의도 지명과 관련 예로부터 전해지는 속설이 하나 있다. 섬 이름 자체의 의미가 "너나 가져라"란 뜻이라는 속설이다. 한자 여의도(汝矣島)의 맨 앞에 '너 여(汝)'자가 붙은 이유가 이 때문이란 것. 구체적으로 조선시대 어떤 공주가 시집가면서 왕에게 하사받으면서 너나 가지란 말을 들어서 생긴 지명이란 이야기까지 전해지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속설에 불과하다.
여의도의 순우리말 지명은 '너벌섬'으로 넓은 섬이란 뜻이다. 한강 중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는 지점에 꽤 큰 면적을 지닌 여의도는 예로부터 너벌섬으로 불렸으며 한자 지명은 이 너벌섬을 음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汝)자는 '너'라는 발음을, 의(矣)는 예전에 옷을 뜻하는 의(衣)가 변형된 것으로 옷을 세는 단위인 '벌'을 음차한 것이다.
여의도를 뜻하는 다른 지명들도 풀어보면 모두 너벌섬이란 지명과 연결된다. 원래 여의도는 '잉화도(仍火島)', 혹은 '나의도((羅衣島)'라 불렸는데 이 역시 모두 앞서 여의도를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너벌섬을 음차해 적기 위해 빌려온 한자 지명들이다. 또한 예로부터 왕실의 목장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너나 가지라고 주는 섬이 아니라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던 땅이었다.
대동여지도에 나온 여의도 부분(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왕조실록 세종3년(1421년)의 기록에 따르면 잉화도에는 축목장(畜牧場)이 있으며 관원들을 보내 목축을 감독한다 했으며 이어 명종 11년(1556년)에는 잉화도의 관노비들이 근친 간 통혼을 하며 습속이 음란하다며 섬의 인가를 모두 철거하고 가축을 기르는 일은 오로지 남자만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후 영조 27년(1751년) 기록부터 여의도라는 지명이 최초로 등장하며 조선조 말기인 고종시대 기록에는 양 50마리, 염소 60마리를 기른다고 기술돼있다.
이 동물농장인 섬의 운명이 뒤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다. 일제는 당시 서울 주둔군이 배치됐던 용산 기지와 가까운 이 섬에 1916년 간이비행장을 건설했다. 여의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22년 12월5일 조선의 파일럿으로 유명했던 안창남 선생이 5만여명의 인파 속에서 비행하고 착륙한 곳도 바로 이 여의도 비행장이었다.
1978년 개발 당시 여의도 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해방 이후 1958년 김포국제공항으로 여객업무가 이관되기 전까지 서울의 공항으로 이용되던 여의도는 1970년대 여의도 개발계획에 의해 도심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0년 2월10일 밤섬이 폭파되고 이후 여의도의 제방인 윤중제가 준공되면서 간척사업으로 면적이 늘어난 여의도는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되면서 일단 정치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듬해 한국방송공사(KBS) 사옥이 준공되고 1980년에는 TBC가, 1982년에는 MBC, 1990년에는 SBS가 입주하면서 방송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금융의 중심역할을 하며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불리기도 했다. 증권의 중심인 한국거래소가 여의도에 들어오면서 각종 증권사와 금융기관들도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주거 인구가 아예 없는 도심지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의도동은 엄연히 주거지역 아파트가 존재하는 곳이다. 지난 2015년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여의도동 인구는 3만3991명이다. 서울아파트와 시범아파트, 공작아파트 등 재건축을 준비 중인 단지들도 많아 아파트 가격 역시 부동산시장에서는 중요한 척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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