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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별세

수정 2017.09.06 10:43입력 2017.09.06 10:43
마광수.[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소설 '즐거운 사라'로 유명한 소설가 마광수(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ㆍ사진)씨가 5일 별세했다. 향년 66세.

이날 낮 1시51분께 마씨가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같은 아파트 다른 집에 사는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마씨가 목을 맨 채 발견된 점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등 6편의 시가 추천되며 등단했고 28세에 홍익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1991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펴내고 이듬해 10월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구속되면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소설은 여대생 사라가 성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3년간의 재판 끝에 1995년 6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고,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복권 이후 다시 연세대 강단에서 활동하다 지난해 8월 정년퇴임했다.

대표작으로 소설 '광마일기(1990)'와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 등이 있다. 올해 초 '광마집(1980)' 등 시집 여섯 권에서 작품들을 추려 '마광수 시선(페이퍼로드)'을 펴냈다. 고인은 1985년 결혼했다가 5년 뒤 이혼했고 자녀는 두지 않았다. 빈소는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7일 오전 11시30분이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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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폭행’ 가해자 대화, “저 XX도 X 되는 거야” 네티즌 분노
수정 2022.03.21 08:45입력 2017.09.06 10:48
또래 여고생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피해자.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제2의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강릉 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나눈 대화가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4일 강릉 폭행 사건의 피해자 가족인 A(20) 씨는 페이스북에 가해자들이 ‘단톡방’에서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가해자 신상이 알려진 것을 언급하면 “XXX 언니(피해자 가족)가 사진 내용 퍼트리면 우리도 저 정도 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가해자는 “XXX(피해자 가족)가 저 글 올리면 저 XX도 X 되는 거야”라며 “우리 신상 다 퍼뜨리면 우리도 그거 고소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 지역에 다 퍼질텐데”라는 말에는 “상관 없음. 저거 어차피 다 흘러가. 나중에 다 묻혀”라고 답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더 피해자가 안 생기도록 이렇게 잔인한 아이들은 형벌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법이 무서운 줄 알고 감형도 절대로 하면 안된다” 등의 반응을 보이는 등 분노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새벽 강릉 경포해변 인근에서 10대 여학생 6명이 평소 함께 어울려 지내던 또래 A양을 집단 폭행했다. 폭행 당시 가해자들이 촬영한 영상이 A양의 가족을 통해 페이스북 등 SNS에 확산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디지털뉴스본부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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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 다른 나라에서도 죄가 됐을까?
수정 2017.09.06 11:39입력 2017.09.06 11:39

성윤리 논란 중심에 섰던 마광수의 죽음과 '사회적 타살'

5일 오후 소설가 마광수 씨가 자신의 자택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진은 1994년 연세대 교수 시절 강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5일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삶을 옥좼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성윤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고 그 여파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은 25년 전인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발간된 이 책 때문에 고인이 음란물 제작·반포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여대생 사라가 성 경험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이 소설이 문학이 아닌 음란물이라는 이유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성관계, 당시 사회에서 '변태적'이라고 봤던 성행위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등이 문제가 됐다. 고인의 구속은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됐다. 문화계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논란에도 불구하고 1995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고 '즐거운 사라'는 음란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고인의 죽음은 그의 문학세계를 포승줄로 묶었던 사회에 의한 '타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는 페이스북에 "시대가 한 사람을 죽였다. 젊은 시절 교단에서 길다란 장미 담배를 줄담배로 피우던 마 교수가 기억난다. 외설 재판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도 사드? 장 주네? 헨리 밀러? 뭐 그 비슷한 작가 한 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헨리 밀러도 대표작 '북회귀선'으로 필화 사건을 겪었다. 하지만 결론은 '즐거운 사라'와는 달랐다. 북회귀선은 작가 자신의 파리 생활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었는데 성에 대한 격렬한 묘사로 처음에는 외설 논란으로 내몰렸다. 미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됐고 1934년 프랑스 파리에서 영어판으로 출판됐다. 미국에 출간된 것은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1961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음란도서로 기소됐다. 3년의 재판 끝에 1964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이 소설을 음란물이라고 비난하는 측에서는 여성 성기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근거로 들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소통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문학적 은유라고 맞섰다. 사회적 관습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했던 이 소설은 지금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헨리 밀러 이전에는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있었다. 1928년 작가가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한정판으로 냈던 이 책은 부유한 지주와 결혼한 한 여인이 남편의 사냥터지기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솔직한 표현과 성관계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논란과 화제를 낳았다. 이 소설은 작가 사후인 1960년 영국에서 무삭제판이 출판되면서 음란저작물 금지법에 따라 고발됐다. 하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음란물 혐의를 받았던 '북회귀선'과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 그 혐의를 벗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30년도 더 지난 1995년 우리 사회는 '즐거운 사라'를 문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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