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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사]링컨에게 전쟁은 미국을 현대국가로 만들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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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사]링컨에게 전쟁은 미국을 현대국가로 만들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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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남북전쟁(1861~1864)이 시작됐다. 전쟁은 곧 돈이다. 그런데 1860년 12월 의회가 열렸을 때 국가 재정은 파산 상태였고, 모든 것이 부족했다. 재정고갈 상태에서 터진 전쟁은 돈을 하마처럼 삼켰다. 더구나 잭슨 정부가 두 번째 국립은행을 폐쇄한 후, 미국의 은행시스템은 분열되고 혼란스러웠다. 당시 연방정부는 기본적인 재정과 금융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했다.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링컨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링컨은 그 막대한 전쟁자금을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 재정과 금융시스템의 모태를 만들었다. 그 금융시스템 덕분에 북부는 전쟁 수행 능력을 확보하고 마침내 승리했다. 그랜트식 소모전은 아메리칸 시스템의 성공을 예고한다.


링컨에게 전쟁은 오히려 기회였다. 그의 꿈인 미국 산업 발전을 위한 은행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의 시작부터 ‘뱅킹’을 외쳤던 링컨은 구세주 같은 인물이다. 1832년, 23세의 링컨은 일리노이주 의원에 도전한다. 첫 연설에서 그는 말한다. "국립은행을, 내부(운송)시스템 구축을, 높은 보호 관세를 찬성합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며 정치적 원칙입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국가 경제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고심했다. 그는 이전 대통령들에 의해 만들어진 불황과 경제적 혼란을 겪으며 화폐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잭슨 대통령은 정부 소유의 땅을 팔 때 금이나 은만 받도록 했다. 그의 후계자 밴뷰런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모든 돈을 경화인 금 또는 은의 형태로 보관하고, 화폐 발행을 제한했다. 링컨은 1839년 연설에서 금과 은에 연동된 화폐 발행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는 경화(금·은)가 재무부 금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면, 철제 상자 속에서 그냥 녹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링컨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 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금도 유효한 재정과 금융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1863년과 1864년에 제정된 국립은행법은 미국 은행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다. 링컨의 소신은 1790년대 국립은행을 산업발전의 기반으로 주장한 해밀턴과 같았다. 곧 은행 통화의 진정한 의미는 ‘과거 저축’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은 기업을 위해 돈을 ‘신용’으로 바꾸는 국부의 보육원이 돼야 했다. 결국 특허를 가진 기업가이자, 철도 변호사 링컨은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한 계획의 일부로 국립은행을 설립한다.


링컨은 또한 재정 시스템의 골격을 만들었다. 당시 연방 세금은 전체 수입의 92%를 수입 관세에 의존했다. 링컨은 가장 기본적인 세금 징수의 절차조차 갖추지 못한 정부를 어떻게든 개선해야 했다. 세금 징수는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부의 채권상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링컨은 관세율과 재산세율 인상, 소득세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세제 개혁을 밀고 나갔다. 법이 발효된 날은 1861년 8월5일. 남북전쟁 발발 105일 만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연방 소득세를 과감하게 부과했다. 당시 소득세를 납부할 수 있는 계층은 전체의 3%였다고 한다. 재정부담이 커지면서 소득세는 고정 세율에서 최초의 누진세로 변경된다. 새로운 소득세법은 세금 납부를 집행하기 위해 연방 징세관제도를 도입했다. 오늘날 미국 국세청의 모태가 만들어졌다. 남북전쟁은 링컨이 원하는 재정적 통합을 달성할 기회였다.


가장 큰 혁명은 1862년 그린백이라 불리는 달러를 법정통화로 선언한 것이다. 그린백은 미국 정부가 발행한 최초의 지폐다. 뒷면이 녹색 잉크로 인쇄돼 그린백으로 알려지게 됐다. 당시 흑백으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에 위조 방지 조치였다. 그린백은 동전과 똑같이 유효한 통화 형태다. 그것은 링컨이 주장했듯이 연방 전체가 이용할 수 있는 표준적 통화다. 처음에 뉴욕의 은행과 영국계 은행은 그린백을 신뢰하지 않고, 경제의 파멸을 예측 또는 기원했다. 의회조차도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했다. 그러나 종이 지폐에 불과한 그린백은 예상보다 훨씬 잘 작동했다. 그린백은 세금을 내고 채권을 구매할 때 사용할 수 있었다. 채권자들은 액면가로 그린백을 받아들여야 했다. 정부는 유통되는 화폐를 늘림으로써 북부 상업의 수레바퀴에 기름칠했다. 주립은행이 발행한 지폐에 2%에서 10%의 세금을 부과했기에, 전쟁이 끝날 무렵 이전에 유통되던 무수한 형태의 화폐가 사라졌다. 이제 모든 사람은 법정통화 ‘그린백’으로 주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링컨은 또한 새로운 법정 화폐로 1억5000만달러를 발행해 전쟁자금을 조달했다.


전쟁은 혁명을 이끌었다. 전쟁 전 연방정부는 우편물 배달과 외교에 국한돼 있었다. 실질적 권력은 ‘주’와 ‘지역’이 행사했다. 그런데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남북전쟁은 국가권력, 경제력, 군사력을 크게 성장시켰다. 연방정부는 유례없는 재정적 금융적 능력을 갖추게 됐다. 돈은 금고 속에서 잠자지 않고, 신용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풀렸다. 철도의 시대가 도래하고,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남북전쟁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연방정부의 채권이 월스트리트에서 거래되면서, 뉴욕은 런던에 이어 세계 제2의 금융시장으로 성장했다. 전쟁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거대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새롭게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가 드디어 탄생했다. 20세기까지 지속될 연방은행시스템의 일반적인 틀과 구조가 만들어졌다. 링컨은 연방 권력의 행사를 이전에 행해졌던 그 어떤 것 이상으로 추진했으며 주와 연방정부 사이의 관계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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