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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 과음 안했으면 없었을 세 친구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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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 과음 안했으면 없었을 세 친구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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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세 사람은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중고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사업을 하는 A씨는 셋 중 가장 여유가 있어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두 친구가 겸연쩍지 않게 술값을 조용히 냈다. B씨는 직장을 명퇴하면서 여유가 있는 A씨에게 돈을 빌렸다. A씨가 채무에 대해 독촉도 한 적 없다. B씨는 A씨가 항상 고마웠다. C씨는 가장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번듯한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후 이혼해 혼자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그들 셋은 연말이면 꼭 만나 소주를 걸치면서 인생의 신산을 같이 어루만져 주었다.


그날도 그들은 연말 모임에서 소주를 기울였다. C씨는 대화도 없이 계속 술을 들이켰다. C씨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경제적으로 잘 된 A씨의 행복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A씨는 별말 없이 소주를 마셨지만 B씨는 그런 C씨의 행동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A가 우리에게 도와 준 게 얼마나 되는데. 넌 고마운 마음도 없는 거냐?" 대화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A씨는 술자리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계산대로 갔다. C씨가 A씨를 따라와 갑자기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당황한 A씨는 C씨를 힘껏 밀어냈다. C씨는 비틀거리며 계산대 옆 바닥에 뒤로 벌렁 넘어졌다. 지켜보던 B씨는 화가 나서 C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몇 번이나 내려쳤다. 주변 사람들이 B씨를 떼어놓았지만 C씨는 꼼짝도 않고 코피가 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겁이 난 A씨는 C씨를 흔들었으나 컥컥 대는 소리만 내면서 요동조차 하지 않았다. 119 구급대와 경찰이 출동해 C씨를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C씨는 내 부검대 위에 올라왔다. 사망 원인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넘어지면서 발생한 경막출혈과 뒤통수를 부딪치면서 뇌의 앞쪽이 반동에 의해 충격을 받은 반충좌상(contrecoup)이었다. 검찰은 최초 식당 내 CCTV를 근거로 B씨가 얼굴을 친 것을 사망 원인으로 파악했지만 B씨에 의해 얼굴에 발생한 피하출혈은 사망의 치명적인 손상은 아니었다.


과도한 음주를 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C씨가 과도한 음주로 인해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두정엽과 소뇌의 기능이 저해되지 않았다면 밀치는 것만으로 뒤통수가 바닥에 바로 부딪히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친구들 간의 우정이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국립알코올연구소(NIAAA) 자료에 따르면 사망 원인 중 알코올과 관련된 죽음이 전체 외인사 중 3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한 바 있다.


술은 매우 긍정적인 면이 많은 물질이다. 어색한 자리에서 윤활유로 작용해 사교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적절한 음주는 심장질환의 빈도를 줄여준다는 논문도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지나친 음주는 술을 마신 사람 자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고와 사건의 발생 빈도도 높여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얼마나 마셔야 적절한 음주인지에 대해 많은 논박이 있지만,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그 술에 대표적인 술잔을 기준으로, 남자는 5잔 이상, 여자는 4잔 이상 마실 경우 폭음(binge drinking)으로 정의한다. 소주로 따지면 남자는 4잔, 여자일 경우 3잔까지가 권장량이다.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면 다들 현실성이 없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폭음이 일상화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힘들고 고된 삶에서 술을 삭제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술 이외에 우리를 달래주고 위로해줄 다른 것을 찾을 이유는 분명히 있다. 법의학자가 조금은 한가해지는 방법이 있다면 술을 적절하게 마시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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