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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먼 톡] 평범하지만 끈질기게 살아간 '김돈이' 처럼

수정 2022.09.27 15:58입력 2022.09.2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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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먼 톡] 평범하지만 끈질기게 살아간 '김돈이'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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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누구?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그녀는 역사의 위대한 순간에 서 있지도 않았고, 훌륭한 남편을 두지도 않았으며, 위대한 자식을 키워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본인부터가 결점많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종사촌은 바로 인종의 왕비였다. 그래서 김돈이는 툭하면 이모댁에 가서 놀다 외박을 해댔고, 이로서 남편의 속을 끓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딸과 함께 여기저기 놀러다니곤 했다. 집안일 솜씨도 형편없었다. 필요한 예복을 순 엉터리로 만들고, 남편의 속옷을 빨아 보내는 것을 잊어버리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남편이 화를 내면 반성하는 대신 애교를 부리며 대충 넘어갔다. 손윗 형님들에게 불손했고, 조카가 인사하러 왔는데 밥이 없다며 굶겨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김돈이는 자식복도 없었다. 낳은 자식들 대부분이 일찍 죽었고 겨우 아들 하나 딸 하나만 살아남았다. 게다가 아들은 지적장애가 있었다. 과거급제 및 입신양명이 삶의 목표이던 시절. 아들은 글공부를 하기는 커녕 자리에 앉아있기도 힘들어했고 도망치기만 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들을 무자비하게 괴롭했다. 매를 수십 대씩 때리고, 머리카락을 한 웅큼씩 뽑았다. 구정물을 입에 쏟아부으며 바닥에 떨어진 오물을 혀로 핥게하며 버러지, 짐승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이런 학대 앞에서 친척 모두가 침묵하며 못본 척 했다. 하지만 김돈이는 아니었다. "우리 애가 병을 앓게 된 것은 당신 때문이다!" 김돈이는 남편에게 대들었고, 싸웠다.


그러다가 을사사화가 벌어진다. 남편은 환갑의 나이에 죄인이 되어 경상북도 성주로 유배가게 된다. 그리고 김돈이는 같이 성주로 가서 직접 양잠을 하고 길쌈을 시작한다. 집안을 되살리기 위해. 물론 그것도 뜻대로 되진 않았다. 아들은 일찍 죽고 손녀 둘과 손자 하나를 남겼다. 남편은 모든 기대를 손자에게 걸었지만 ? 그게 문제였다. 남편은 손자의 육아일기까지 쓰며 공을 들였지만, 또다시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손자를 옭죄며 폭력을 행사했고, 결국 손자는 대차게 엇나갔다. 김돈이는 남편을 말리지 못했지만, 사실 그럴 수 없을만큼 바빴을 것이다. 김돈이가 종사했던 양잠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뽕잎을 따고, 누에를 키워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고, 이걸 표백해서 천을 잣고 염색까지도 해야 한다. 일도 많고 사람 손도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 놀기 좋아했던 철없던 서울댁 김돈이는 이제 성주의 뽕 따는 인부, 염색어미, 시장아낙들을 자신의 생일잔치에 불러들여 함께 신나게 노는 사이가 된다. 얼마나 놀라운 변신인가. 제대로 벌이가 없는 유배생활,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김돈이의 덕이었다.


그럼에도, 김돈이는 끝내 남편이 손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막지도 못했고, 손녀에게 좋은 혼처를 구해주는 일도 잘 풀리지 않았다. 남편의 유배는 끝내 풀리지 않았고, 김돈이는 갖은 병을 앓다가 70세의 나이로 성주에 묻혔다. 남편은 김돈이를 위해 묘지명을 썼다. "여자의 직분을 수양하고 가지런히 하여 예절을 익혔다"는 좀 많이 미화한 내용이 있긴 했지만. 한편 김돈이의 손녀 이숙녀도 남편 복은 없었다. 임진왜란 때 남편 송상현은 동래현에서 "죽는 건 쉬워도 길을 비켜줄 순 없다"며 순절했으니까. 하지만 홀몸이 된 손녀는 이후로도 잘 살았을 것이다. 위대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았지만, 모질게 살아남아 다음의 날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녀의 할머니 - 묵재일기, 양아록을 쓴 묵재 이문건의 아내였던 김돈이처럼.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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