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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직업혁명가 유산과 미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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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직업혁명가 유산과 미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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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인하여 1980~1990년 시대 저항이 다시 불을 뿜고 있다. 그가 가담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조직과 백태웅, 박노해, 은수미 등 기라성 같은 투쟁의 캐릭터들이 소환되고 있는 서울 한여름 풍경이다. 청문회 준비에 들어간 조 후보자 본인도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저의 1991년 활동이 2019년에 소환됐다"면서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아픔과 같이 하고자 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당시 사노맹 리더였던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은수미 성남시장도 소회를 밝히며 마녀사냥을 그만하라고 가세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혁명가 뉴트로'로 고조되는 듯하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 뉴트로 말이다.


똑똑히 기억하건대 그땐 정말 오롯이 혁명의 시대였다. 함석헌, 문익환, 백낙청, 박현채, 백기완, 리영희가 원로 사상가였다면 강철서신 김영환, 사노맹 백태웅은 청년 운동가였다. 강철이 먼저 반미자주파 또는 주사파를 낳았고 사노맹은 북한을 비판하는 자생적 사회주의자로서 민중민주파가 돼 철저히 대척했다. 당파 이름마저도 NLPD와 PD로 각을 세워 이후 학생과 사회 운동권, 정치권 계보 양 갈래로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온몸에 가하는 전율로 기억하는 아픈 상흔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린 젊은 날 고초를 겪은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흐느꼈던 사람들에게도 춥고 침울한 유산이었다.


이제 조 후보자가 메신저로 되살린 사노맹 유산은 다음 몇 가지 지점에서 날카로운 사상계 교훈을 던져준다. 첫째는 직업혁명가 캐릭터 가치다. 둘째, 대중은 지금 타는 목마름으로 미래 콘텐츠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은 그때 그렇게 중했던 당파성의 종언이다.


조 후보자는 단연코 직업혁명가 캐릭터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노맹 총책 백태웅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아로새긴 그대로 노동자 학생을 이끌고 반대 종파와 혈투를 불사하는 대중의 리더로서 직업혁명가 이미지가 점점 더 선연해지고 있다. 물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겠지만 사노맹을 포함한 1980~1990년대 운동권은 레닌주의가 남긴 직업혁명가 모델을 금이야 옥이야 했었다. 남다른 자존감 같은 장점도 남기지만 때로는 특권과 독선으로 변질될 수 있음에도. 민주화 이후에는 극한 대립과 정치 퇴행과 같이 사회 공동체가 떠안은 부담이 돼버린 측면도 있다. 가장 큰 병폐는 과거 지향적인 유물로서만 기능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둘째 담론인 미래 가치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9월2일 이전으로 예정된 법무부 장관 인사 청문회가 코리안 레미제라블 무대로 튈 것만 같아서다. 공안검사들 무리가 자베르 경위로 빙의해 20년 전 만났던 전과자 장발장을 쫓듯이 그 시절 직업혁명가 캐릭터를 신랄하게 공격한다면?


관전하는 국민들 눈에는 그저 모두가 비참한 사람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군집으로 비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아무도 말리지 않고 과거 지향적인 장발장 모습에만 꽂혀 취조와 심문, 사상 검증에만 열중한다면 그런 정치인의 국민들은 '우린 모두 레미제라블!'이라며 탄식만 쏟아낼 테다. 그에 맞서 장관 후보자도 내가 옳았다며 다툼만 한다면 미래와 내일이라는 사전에서 대한민국은 이참에 완전히 빠지는 꼴이 되고 만다.


그쯤 되면 가장 크면서도 조속히 떨궈야할 국가 부채 하나가 남는다. 당파성의 환생이다. 그 당시 직업혁명가들이 서식할 수 있었던 근거지가 곧 나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의 둥지였다. 사노맹도 둥지였고 당파였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혁명의 시대였기에 적과도 싸우고 내부 종파와도 그야말로 박 터지게 붙었다. 재연하여 국민들 앞에서 버젓이 A종파, B종파, C종파가 헤게모니 싸움을 벌여대는 시발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다.


대신 직업혁명가라는 국가 부채가 미래 혁신가 리더라는 자산으로 바뀌는 마술을 이번 청문회 국면에서 과시해주면 좋겠다. 사노맹 경제민주화 의식을 깎아내리면 포용국가로 잘 대꾸하고 기어이 미래를 가리켜야 한다. 케케묵은 국가 전복을 들춰내면 혁신하는 사회 청사진으로 토론 판 갈이를 해서라도 비전과 미션 설명서를 들이밀어야 한다. 국민 대동단결, 대중 스스로의 능력과 합쳐 도대체 무슨 과업을 어떤 로드맵으로 수행해 주어진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지를 또렷이 보여주어야만 합격이다.


대단한 직업혁명가 드라마였던 사노맹의 추억은 쓰라렸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 손에 꼭 쥔 자산이기도 하다. 과거만 파먹고 사는 21세기 레미제라블이 되길 거부할 명분도 안겨 준다. 깊고 어두운 직업혁명가 유산을 가공해 꽉 막힌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생산적인 콘텐츠 만들기에 집중할 더없이 좋은 기회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국문화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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