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금융위기 '문제아'에서 코로나19 '소방수'로…美 월가, 신뢰 얻을까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41초
뉴스듣기 글자크기

월가, 가계·기업에 유동성 공급 역할…'신용경색·금융위기 막아라' 미션
코로나19 대응 위한 은행 규제 완화 잇따라…"핑계돼선 안돼"

금융위기 '문제아'에서 코로나19 '소방수'로…美 월가, 신뢰 얻을까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AD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우리는 도움을 주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 - 마이클 코뱃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미국 월가 투자은행(IB) 경영진들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코뱃 CE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롤러코스터처럼 큰 폭으로 움직이는 시장 상황을 두고 "이건 금융위기가 아니다. 은행과 금융시스템은 건전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응시하고 '도움'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방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시티그룹의 수장인 그는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중소기업과 개인 고객들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IB)들이 10여년만에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 앞에 섰다. 2008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문제아' 은행들이 '소방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로 실물경제가 통째로 흔들리는 가운데 가계·기업의 대출 상환 기한을 미루고 자금 유동성을 밀어넣는 핵심 역할이다. 정부는 물론 중앙은행, 금융당국까지 가계, 기업 등 경제 주체들과 직접 소통하는 은행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AP통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악당으로 지목됐던 은행들이 코로나19에 경제 위기로 망연자실한 미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유력 경제지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소비자와 기업들이 받을 수 있도록 대출기관(은행들)들이 '전달 메커니즘'을 수행하길 요청받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위기가 은행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금융위기 '문제아'에서 코로나19 '소방수'로…美 월가, 신뢰 얻을까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 월가, 금융시스템 위기 막을 수 있을까 = 은행이 제 역할을 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은 코로나19 사태로 망가진 실물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금융시장의 유동성 공급과 신용경색 방지를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시장에서는 현재 은행들이 첫번째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시장이 큰 폭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금융위기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고 은행들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만큼 이후 규제가 더욱 강화돼 건전성 측면이 양호해진 것이다.


월가 은행들은 대출 상환 연기부터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신용카드 소지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결제 시점 연기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으며 대출 연체에 따른 압류 조치 등을 중단키로 했다. 시티그룹도 신용카드 소지자의 한도를 늘려주고 월서비스 요금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면제키로 했다. 이 외에도 각 은행들이 자동차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상환 시점을 미뤄주고 저금리 개인 대출을 제공하는 등 가계와 기업에 도움이 될만한 조치들을 취한 상태다.


3일부터는 3490억달러 규모의 미국 연방정부의 중소기업 대출을 내어주는 창구 역할도 맡게 됐다. 500명 이하 직원을 둔 사업체는 2년 동안 최대 1000만달러(약 123억6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으며 정부가 보증하는 만큼 담보는 필요 없다. 갑작스런 대출로 대출 절차와 기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전달이 늦어져 혼란이 일기도 했으나 정부에서 기업으로 자금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로 은행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은행 입장에서는 반가운 상황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 제로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향후 대출금리가 떨어져 이자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실물경제 악화로 가계와 기업의 대출 부실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가 줄어 관련 수수료 수익도 감소한 상태다. 은행 주가도 40% 이상 폭락했다.


금융위기 '문제아'에서 코로나19 '소방수'로…美 월가, 신뢰 얻을까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결국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은행들이 얼마나 잘 버텨줄 수 있을지가 명예 회복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현금 흐름을 유연하게 하면서 금융시스템은 붕괴하지 않도록 견뎌내야 위기를 비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나 주택담보대출 등 각종 부실 채권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시장에서 쏟아지고 있는 만큼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은 상황이다.


AP는 "은행들은 수백만명의 대출자와 기업들을 수천만달러 규모의 대출로부터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이는 은행 자체 재정에는 막대한 손상을 줄 수 있다"면서 "이코노미스트들은 (현재로서는) 은행이 위기를 버틸만한 자본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 유동성 핑계삼아 풀리는 규제들…괜찮을까 = 이번 위기 상황에서 주목해야할 점 중 하나는 미 월가 은행들을 둘러싸고 있던 규제들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층 강화된 규제가 현 상황에서 은행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때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판단에서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규제 정책을 완화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건전성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쌓게끔 한 자본을 시중에 풀 수 있게 한도를 낮추는 식이다.


Fed는 지난 1일 대형 은행들의 자본 요건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국채시장의 긴장 해소를 위한 것으로 현재 최소 3.0%로 규정해둔 '보충적 레버리지비율(SLR)'을 1년간 완화했다. 또 SLR 산정에 미 국채와 Fed 예치 예금은 제외키로 했다. 이번 조치는 내년 3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금융위기 '문제아'에서 코로나19 '소방수'로…美 월가, 신뢰 얻을까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Fed는 미국 은행에 대한 일부 감독 행위도 중단하고, 은행들의 비상 대출 창구인 재할인창구를 이용하도록 재할인율 금리를 1.75%에서 0.25%까지 대폭 인하했다. 재할인창구 대출 만기도 기존 하루에서 90일로 연장했다. 은행들의 총손실흡수자본(TLAC) 규제도 일부 완화했다. 은행 자본건전성 규제인 바젤Ⅲ 규제체계도 이행시기가 1년 유예돼 2023년으로 미뤄졌다.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금융당국도 은행 관련 규제를 대거 풀어줬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뒤 이렇게 완화한 규제들을 다시 강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전 세계 중앙은행과 금융당국들이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지만 은행들의 이해관계와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에서 규제가 과도하게 풀리는 것 아니냐는 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나타낸다.


미국은행가협회(ABA)는 이를 틈타 미 의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 로비를 진행하고 있다. 지역은행들의 규제를 완화하고 은행 레버리지 비율을 낮췄으며 SEC에 새로 도입된 회계기준인 현행기대신용손실(CECL) 시행을 늦춰달라는 등의 요청을 하고 있는 상태다. BoA는 지난달 "산더미같은 규제들이 제거돼야 한다"면서 "그러한 규제 완화가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대한 위협이거나 방어력을 완화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고서를 통해 강조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은행감독업무를 총괄했던 셰일라 베어 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지난달 중순 야후파이낸스에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코로나19가 대형 은행의 규제를 대거 완화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현재와 같은 위험한 상황에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된 규제들을 과도하게 풀어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