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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도 퍼졌던 '막걸리 빚기 문화' 무형문화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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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시기에도 존재했다고 추정되는 '거칠고 빨리 걸러진 술'
주세령 따라 양조장 막걸리로 대중화…가양주 제조 재확산 추세

가정에도 퍼졌던 '막걸리 빚기 문화' 무형문화재 된다 지에밥과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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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시기부터 존재했다는 막걸리가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된다. 문화재청은 '막걸리 빚기 문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13일 전했다.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 관련 생업·의례·전통 생활관습 등이다. 다음 달 12일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막걸리는 농경 시기에도 존재했다고 추정된다.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는 까닭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미온', '지주', '료예' 등에 관련 내용도 수록돼 있다. 고려 시대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막걸리를 '백주(白酒)'라고 적었다.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 표기는 조선 시대 '춘향전'', '광재물보' 등에서 확인된다.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등 조리서에는 제조 방법도 실려 있다.


가정에도 퍼졌던 '막걸리 빚기 문화' 무형문화재 된다 경남 거제시 동부면 수산마을 남해안별신굿 제상차림


쌀 막걸리는 고두밥(되게 지어 고들고들하게 지은 된밥)에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 간 발효한 뒤 체에 걸러 만들어진다. 막걸리의 '막'은 '마구'와 '빨리', '걸리'는 '거르다'를 각각 가리킨다. '거칠고 빨리 걸러진 술'이라는 것. 순우리말일 뿐만 아니라 이름에서 술을 만드는 방식과 특징이 드러난다.


막걸리는 제조 방법이 어렵지 않다. 값까지 저렴해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농사꾼들에게는 농번기에 땀과 갈증을 해소하는 농주(農酒)로 인식됐다. 마을 공동체의 생업, 의례, 경조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신주(神酒)로서 준공식, 자동차 고사, 개업식 등에 제물로 올라간다.


가정에도 퍼졌던 '막걸리 빚기 문화' 무형문화재 된다 대쾌도 중 일부 술을 따르는 모습


막걸리는 조선 시대까지 각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던 발효음식이었다. 주세령(1916) 등 국가 정책에 따라 가양주 대신 양조장 막걸리로 일반화됐다. 하지만 적잖은 집안들은 여전히 특유 술 맛을 유지한다. 자가 제조는 1995년 자가 소비용으로 가양주 제조가 다시 허용되면서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문화재청 측은 크게 여섯 가지 점에서 무형문화재 가치가 충분하다고 봤다. ▲오랜 역사와 한반도 전역에서의 전승·향유 ▲삼국시대 고문헌에서 확인되는 제조방법 ▲식품영양학, 민속학, 역사학 등의 학술연구 자료 ▲농요·속담·문학작품 등 다양한 문화로 확대 ▲전국 양조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뚜렷한 특색 ▲다양한 전승 공동체를 통한 제조방법 전승·유지다.



가정에도 퍼졌던 '막걸리 빚기 문화' 무형문화재 된다 누룩틀


온 국민이 전승·향유한다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았다. 관계자는 "국민이 '숨은 무형유산 찾기'와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에 제안해 지정 예고된 첫 번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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