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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그림으로 읽는 서양예술사] 반 고흐의 꽃, 해바라기
최종수정 2019.03.13 12:48기사입력 2019.03.13 12:48
[이미혜의 그림으로 읽는 서양예술사] 반 고흐의 꽃, 해바라기

1888년 8월20일 월요일. 반 고흐는 해바라기 연작에 착수했다. 어떻게 그릴 지는 이미 생각해둔 상태였다. 그는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빠르게 그려나갔다. 구성은 단순하다. 소박한 항아리, 해바라기 한 다발, 테이블, 배경이 되는 벽, 이 네 요소뿐이다.


첫 번째 그림은 연한 청록색 배경에 세 송이 해바라기가 연두색 화병에 꽂혀 있다. 두 송이는 활짝 피었고, 한 송이는 시들어 씨방만 남아 있다. 네 점의 연작 가운데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두 번째로 그린 여섯 송이 해바라기는 구성이 약간 더 복잡하다. 초록색 화병에 해바라기 세 송이가 담겨 있고 테이블 위에 세 송이가 더 놓여 있다. 로열 블루 색 바탕에 그려진 노란 꽃잎들이 날름거리며 타오르는 불꽃같다. 바탕색과 보색인 주황색으로 꽃과 잎, 화병에 윤곽선을 둘러 장식성과 색의 대조를 강조했다.


수요일. 반 고흐는 세 번째 해바라기를 시작했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되리라 장담했던 그림이다. 연한 청록색 바탕에 노란색과 황갈색 해바라기가 생동감 있게 어우러져 있다. 각기 다른 생장 단계에 있는 열네 송이의 해바라기들을 조합해 극적인 효과를 자아냈다. 우측 아래 채 피지 않은 작은 꽃이 머리를 내밀고, 그 위로 활짝 핀 꽃과 씨방만 남은 꽃대가 소담하게 담겨 있다. 커다란 꽃송이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


네 번째 그림은 한 송이가 더 많다. 꽃송이 크기를 조금 작게 해 간격을 띄우고, 꿈틀거리는 줄기가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이 그림은 꽃도, 항아리도, 벽도 노란색 계열이다. 초록색 꽃받침, 씨방 한 가운데 짙은 갈색을 제외하면 몇 개의 파란 선이 있을 뿐이다. 항아리 윤곽, 테이블과 벽의 경계선, 빈센트라는 서명에 아껴서 사용된 파란 색은 보색인 노란색을 선명하게 만든다. 전체가 노란 색 계열인데도 지루하지 않은 건 이 파란 선 때문이다.

[이미혜의 그림으로 읽는 서양예술사] 반 고흐의 꽃, 해바라기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 1888년 (92 x 73 cm, 내셔널갤러리, 영국 런던)

반 고흐는 자신의 작품 가운데 6분의 1 정도만 서명을 했다. 완성도가 높아 판매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을 경우, 선물을 할 경우에 서명을 했다. 해바라기 연작 중에는 열네 송이와 열다섯 송이에 서명을 했다. 보통 캔버스 왼쪽 구석에 서명을 했지만 이 두 작품은 중앙에 위치한 항아리에 서명을 했다.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는 해바라기 세 송이로 시작한 연작은 점점 꽃송이가 불어나며 열다섯 송이에서 절정을 이룬다. 색상과 구도가 변주되는 네 점의 해바라기 앙상블은 활짝 피었다 시드는 인생의 단계를 나타내는 것 같다.


반 고흐는 스물일곱 살이 되던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 4년 동안 데생과 수채화를 그리며 기법을 익혔다. 안트베르펜 아카데미를 잠시 다니다가 1886년 동생 테오가 미술상을 하고 있는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인상주의를 접한 후 칙칙한 색에서 벗어나 밝은 색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주와 무질서한 생활로 건강을 해쳤고 심기일전을 위해 남프랑스의 아를로 내려갔다.


1888년 2월 아를에 당도한 반 고흐는 찬란한 남프랑스의 햇빛 속에서 열정적으로 그림에 달려들었고 인상주의를 뛰어넘어 독자적인 스타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호텔에서 묵으며 작업을 했으나 덜 마른 캔버스가 여기저기 널리자 호텔 주인은 싫은 기색을 했다. 반 고흐 자신도 불편함을 느끼고 5월1일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한 건물의 방 네 개를 빌렸다. 허름하고 싼 방이었으나 반 고흐는 이 집을 '노란 집'이라 부르며 애착을 보였다. 여유 공간이 생기자 반 고흐는 동료 화가들을 불러 함께 작업을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첫 행보로 파리에서 알고 지냈던 고갱에게 초청 편지를 썼다. 고갱은 파리를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의 딜러였던 테오가 돈까지 대주며 권유하자 아를 행을 결정했다. 고갱이 오길 기다리면서 반 고흐는 친구가 묵게 될 침실을 장식할 그림을 그렸다. 고갱의 방이 어떻게 장식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반 고흐는 청록색으로 벽을 칠하고 열네 송이 해바라기 그림과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 그림, 라마르틴 광장을 그린 풍경화 네 점을 걸 예정이었다. 작은 방은 아마 전시실처럼 반 고흐의 그림으로 꽉 들어찼을 것이다.


10월에 드디어 고갱이 내려왔다. 하지만 개성이 강한 두 사람은 의견충돌이 잦았다. 각자 예술관이 뚜렷했고 고갱은 깔끔했으나 반 고흐는 어지르고 대충 사는 편이었다. 고갱은 아를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리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고갱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12월23일에도 둘은 언쟁을 벌였다. 고갱은 화를 내며 집을 나갔다. 반 고흐는 그를 뒤따라 나갔으나 고갱은 뿌리치고 시내로 가버렸다. 분을 참지 못한 반 고흐는 방에 돌아와 자신의 귀 일부를 잘랐다. 그는 종이에 귓불을 싸들고 근처 유곽에 찾아가 마담에게 건네주었다. 놀라 자빠진 마담은 경찰에 신고했다. 고갱은 짐을 싸가지고 파리로 도망쳤다.


병원과 노란 집을 오가던 반 고흐는 1889년 4월 말 노란 집을 닫고 아를 인근의 생레미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해바라기 연작을 포함해 노란 집에 있던 그림들은 파리의 테오에게 보냈다. 테오가 보관하던 열네 송이의 해바라기와 열다섯 송이의 해바라기는 1890년 브뤼셀에서 열린 '20인 전'에 출품되어 주목을 끌었다. 같은 해 열린 제6회 '앵데팡당 전'에도 이 두 작품이 출품되었다. 앵데팡당 전을 둘러본 모네는 테오에게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생레미를 그린 풍경화 아홉 점이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갱을 기다리며 해바라기를 그리던 1888년 여름은 반 고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창조적 에너지는 절정에 달해 있었고 그는 확신에 차서 폭발적인 터치로 그림을 그렸다. 불꽃처럼 팔락이는 노란색 꽃잎, 꿈틀거리는 줄기, 남프랑스의 빛나는 태양 같은 해바라기는 반 고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하지만 반 고흐가 그토록 기다렸던 고갱은 치사한 인간이었다. 고갱은 아를에 내려와 극진한 대접을 받고 흐뭇해했지만 곧 반 고흐가 자신보다 뛰어난 화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실에 걸려 있던 반 고흐의 작품은 위기감과 질투심을 유발했다. 반 고흐가 죽은 뒤 점점 유명해지자 이것도 심사를 건드렸다. 고갱은 죽기 직전인 1903년에 회상록 '전과 후'를 펴냈다. 그 책에서 고갱은 반 고흐를 아마추어로 깎아내리고, 자신이 한 수 가르쳐준 덕분에 해바라기 연작이 태어났다고 썼다. "나는 그를 일깨워주기로 했다... 그날부터 나의 반 고흐는 놀랄 만큼 발전했다... 그 결과가 바로 해바라기 연작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를 돕는 데 만족했을 뿐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고 공치사를 했다. 반 고흐가 작품 진행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적은 편지를 테오에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고갱의 허풍이 세상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사랑이나 우정은 종종 번지수를 잘못 찾아 그것을 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에게 향하기도 하는 법이다.


[이미혜의 그림으로 읽는 서양예술사] 반 고흐의 꽃, 해바라기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왼쪽부터 '해바라기 열네 송이' 1888년 (91x72㎝, 노이에피나코테크, 독일 뮌헨), '해바라기 세 송이', 1888년 (73x58㎝, 개인 소장), '해바라기 여섯 송이', 1888년 (98x69㎝, 소실됨).

네 점의 해바라기 가운데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두 점뿐이다. 세 송이가 그려진 첫 번째 그림은 개인 소장품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본 소장가의 손에 들어간 여섯 송이 해바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어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열네 송이 해바라기는 뮌헨 노이에피나코테크에,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다. 열네 송이 해바라기는 1905년 베를린 국립미술관장이었던 후고 폰 추디가 구입해 1909년 뮌헨의 바이에른 주립미술관장으로 이직할 때 가져갔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익명의 독지가가 추디의 부인으로부터 이 그림을 구입해 바이에른 주정부에 기증했고 오늘날 노이에피나코테크에 있게 되었다.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는 영국 미술관 담당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테오의 부인 요하나를 설득해 1924년 구입했다. 오늘날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보물로 꼽히고 있다.


이 두 점 외에 반 고흐가 셍레미 요양원에 들어가기 직전인 1889년 1월경 직접 복제한 세 점의 해바라기가 더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있는 것은 뮌헨 노이에피나코테크 버전과 거의 동일하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버전과 흡사한 두 점은 각각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일본 도쿄의 손보 재팬 도고 세이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미혜 예술사저술가·경성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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