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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때론 맨눈으로 보아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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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의 과학과 맨눈으로 보는 세상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때론 맨눈으로 보아야 예쁘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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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어느 가을날에 있었던 세기의 우주 쇼로 과학계와 언론은 몇 달 전부터 떠들썩했고 고가의 천체망원경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바로 밤하늘 사자자리 유성우라는 천문 현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시간에 만 개 가까운 유성을 기대했지만, 예측은 빗나갔고 기대와 간절함은 실망과 원성이 됐지요. 사람들이 기대했던 유성은 단순한 천문 현상을 넘어 동화 속 별똥별이기도 합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바라던 것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시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엄청난 사건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고, 비처럼 쏟아지는 별똥별에서 당시의 상처를 위로받으려던 사람들은 실망이 컸을 겁니다. 당시 천체 관측이 취미였던 저도 관측을 위해 한적한 시골에 자리를 잡았지요. 물론 망원경이 있었지만 접어두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두꺼운 침낭 속에 들어가 하늘을 향해 누워 있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예측대로 시간당 만 개의 유성이 떨어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유성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요?


유성은 매일 지구로 떨어지지만 혜성이 지나간 궤도를 지구가 공전하며 지날 때는 그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유성우는 혜성이 지나간 자리에 무수히 남겨진 조각들이 마치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멀고 먼 미지의 대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게 맞지만, 결론적으로 거대한 밤하늘이란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상대로 망원경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시도이지요. 망원경에 설치된 렌즈는 대상을 확대하는 만큼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인류와 함께한 광학의 한 부분을 망원경처럼 확대해 보겠습니다.


망원경 렌즈의 가장 큰 기능은 멀리 있는 대상을 눈앞으로 옮겨다 놓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빛이지만 우주가 지나온 과거의 모습과 시간 그리고 물질의 기원까지도 인류의 눈앞에 옮겨놨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게 된 몇 차례 도약에 망원경이 등장했지요. 우리는 그 첫 번째 도약인 망원경 발명자를 갈릴레오로 알고 있습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천체와 우주의 진실을 밝히기 시작했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보는 과학적 도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망원경은 그 이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지요. 특히 빛을 다루는 광학은 꽤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했습니다. 이미 기원전 3세기께 수학자는 직진하는 빛이 매질을 통과하거나 반사되며 방향을 바꾼다는 사실을 수학적 규칙으로 정리했고, 거울이나 렌즈가 만들어진 시기는 훨씬 오래전인 기원전 2000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망원경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6세기입니다. 무려 3500년 동안 인류가 이런 매력적인 도구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을 텐데 망원경은 왜 이렇게 늦게 등장한 걸까요? 고대 철학과 과학이 암흑 시기인 중세를 거치며 사라졌던 것처럼 그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광학도 주춤했을 겁니다.


하지만 신 중심 사회였던 중세에도 언젠가 광학이 태양과 별의 형상을 지상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신이 중심인 사회에서 인간을 탐구해온 모든 유산이 사라졌지만, 밤하늘의 별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인류는 끊임없이 밤하늘 저 너머의 세상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리고 11세기에 아랍은 광학 관련 이론을 정립하며 유럽에 전파하고 근대 과학 발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노력은 결국 17세기 초에 갈릴레오가 달과 천체를 인간의 세상으로 끌어다 놓게 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그의 노력만은 아니었지요. 어쩌면 다 된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417년 독일의 어느 서원 지하에서 고대 철학의 필사본이 발견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16세기 말부터 보석과 같은 광물이나 유리를 연마하는 기술이 급속하게 발달했습니다. 과연 두 사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인간을 되찾기 위한 문화혁명은 인쇄술을 발달시켜 사람들에게 책을 급속도로 보급했고 안경과 돋보기가 그 속도에 편승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네덜란드에는 안경 기술자가 많았습니다. 아랍으로부터 유럽에 전해진 렌즈 기술이 네덜란드에 가서 개화됐기 때문이지요.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때론 맨눈으로 보아야 예쁘다

한스 리페르스헤이는 꽤 실력 있는 렌즈 제작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광물인 수정을 연마해 만든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검사하기 위해 살피다가 우연히 두 렌즈를 겹쳐 근처에 있는 교회 탑을 봤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지요. 멀리 있는 탑이 아주 가깝게 보였던 겁니다. 물체를 확대해 볼 수 있는 돋보기는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가까이 있는 대상만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금속 통에 두 개의 렌즈를 넣고 망원경을 만들었지요. 보고자 하는 대상에는 볼록렌즈를 넣고 눈의 방향에는 오목렌즈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굴절 망원경의 시초입니다. 볼록렌즈는 돋보기처럼 작은 물체를 크게 확대하는 기능이 있지요. 오목렌즈는 반대로 물체를 작아 보이게 하지만 빛을 퍼지게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두 조합이 먼 거리에 있는 물체를 확대하는 배율을 결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1년 후인 1609년에 이탈리아의 갈릴레오는 네덜란드의 망원경을 참고해 천체 관측을 위한 용도로 수정했습니다. 그는 천체망원경으로 달이 태양 빛의 반사로 빛난다는 사실과 분화구의 존재를 확인했고, 목성은 4개의 큰 위성이 있고 토성에는 고리가 있으며 금성이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불과 33배로 확대한 망원경이었지만 갈릴레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위대한 발견을 했고 인류는 이 도구로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됐지요.


분명 갈릴레오의 발견은 도약이었지만 망원경 최초 발명자라는 명예는 제 주인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리페르스헤이가 이런 과학적 도약에 이바지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가 과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연구가 과학사에 가치를 둘 수가 없다고 주장하지요. 그는 과학자가 아닌 기술자나 사업가에 가까웠지만, 빛을 다루는 광학이 지금도 물리학의 범주에 있는 만큼 그가 광학 연구에 바친 노력을 볼 때 그가 과학자가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과학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가치 중립적 대상이고 누구나 시선을 과학적으로 두고 연구하면 과학자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과 주장을 꺼낼까요.


우리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1000년 전 아랍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광학의 책'에서도 시각적 인식은 물체에 반사된 빛이 눈에 들어와 이뤄진다고 했고 눈에는 볼록렌즈를 닮은 수정체를 가지고 있으니 모두 같은 세상을 보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간혹 사람들은 각자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요. 서로 다른 자신만의 렌즈를 품고 세상에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렌즈는 세상의 모습을 굴절시키며 상을 왜곡해 전달합니다. 실제로 두 개의 렌즈로만 된 망원경은 상하좌우가 뒤집혀 전달되지요. 우리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때 가까운 거리의 상은 유난히 커 보이고 중심축에서 벗어나면 휘어지기도 하고 색깔도 차이가 나는 것을 쉽게 경험합니다. 이런 모든 것을 과학적 용어로 수차라고 합니다. 그리고 렌즈에는 기능적으로 특정한 빛만 통과시킬 수 있는 필터도 있지요. 우리가 각자 품은 렌즈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정확하고 자세히 보겠다고 자신만의 망원경에 설치한 렌즈가 수차로 왜곡된 모습의 세상을 전달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잘못된 필터는 정작 봐야 할 세상보다 보고 싶은 세상만 보이게 합니다. 물론 우리 삶에서 도약을 위해 망원경을 지니고 삶과 세상을 깊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과학자와 공학자는 렌즈의 왜곡을 줄여 실제의 세상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광학을 연구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만능 렌즈는 없습니다. 사진작가가 교환 렌즈를 바꿔가며 최상의 사진을 찍듯이 우리도 여러 가지 렌즈를 가지고 겹쳐 보기도 하고 바꿔 보기도 하면서 세상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자신의 렌즈 배율과 수차가 결국 좁고 왜곡된 세상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천체망원경은 멀고 깊은 미지의 우주를 관찰하는 도구입니다. 설령 유성우가 떨어졌던 당시에 운이 좋게도 망원경으로 찰나의 시간을 잡았다 해도 밤하늘 무대에서 벌어진 거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별똥별처럼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 현상은 망원경이 아니라 맨눈으로 봐야 하듯이 때로는 자신이 가진 렌즈를 세상에 대지 않고 전체를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동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서쪽에서 태풍이 일어날 정도로 복잡하고 유기적인 세상은 전체를 품지 않으면 제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망원경에는 어떤 렌즈와 필터가 설치돼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20년 전의 사람들처럼 늘 망원경으로 세상을 보려는 건 아닐까요. 때로는 그냥 보는 것이 맞습니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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