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권한나의 캐디편지] "운수 좋은 날"

수정 2012.08.17 09:12입력 2012.08.17 09:12

[권한나의 캐디편지] "운수 좋은 날"
"공 못 치면 돈으로 때우면 되지 뭐(?)"


내기에서 한 번도 돈을 따본 적이 없다는 고객입니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이랍니다. 그나마 조금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캐디에게 미리 "언니, 오늘 나 좀 잘 봐죠"라고 조용히 일러둔다네요. 제 오랜 캐디 경력으로 어림잡아 봐도 실력이나 멘탈이 돈을 딸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뭘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 정도였죠. 몇 홀을 헤매더니 겨우 한 번 잘 맞은 공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공을 찾는 척이라도 해야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공이 나간 근처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죠. 그런데 깊지 않은 러프에 공 하나가 보입니다. 하얗게 반짝이는 공을 보자 고객과 저는 순간 흥분했죠. "오늘 운이 따라주네"하며 그 홀에서 두둑이 지갑을 채웠습니다.


동반자들은 완전히 나간 공을 두 눈으로 봤지만 떡 하니 살아있으니 더 이상 뭐라고 할 말도 없습니다. 몇 홀이 지난 후 공을 고속도로까지 날려 보낸 이 분께 또 행운이 따라줬습니다. 근처 러프에 방금 친 공과 똑같은 공이 있지 뭡니까. 주위에서는 제가 '알을 까줬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음 홀부터 결국 구분하기 좋은 컬러공으로 교체했습니다.

또 다음 홀, 이번엔 그린 뒤로 넘어간 공이 나무 밑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저만 아는 비밀이었지만 브랜드와 색깔만 같았지 번호는 다른 공이었지요. 하지만 동반자들은 똑같이 생긴 공이 살아 있으니 우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누군가 찾지 못하고 간 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연신 입이 귀에 걸려 처음 돈 따는 기분을 만끽하신 고객은 "앞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야겠다"며 플레이를 마쳤습니다. 같은 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찾을 수 없는 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보물이 됐습니다. 운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또 빼앗아 가기도 하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때문에 울고 웃는 골프가 참 재미있습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 SNS공유 스크랩

오늘의 토픽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