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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전쟁 고발 영상에 담긴 위험한 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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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

[이종길의 영화읽기]전쟁 고발 영상에 담긴 위험한 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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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는 갓난아기가 앙글거리는 샷으로 출발한다. 감독인 와드 알-카팁의 딸 사마 알-카팁이다. 아기는 엄마가 들려주는 동요에 미소 지으며 옹알거린다. 그 순간 화면이 요동 치기 시작한다. 와드와 남편 함자 알-카팁의 대화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와드, 지하로 내려가. 또 폭격을 하려나봐." "지금 갈게. 누가 사마 좀 맡아줘." "빨리 내려가자." "또 폭격기야?" "아니, 탱크." "미치겠네, 어떻게 매일 이래?“


그들이 통과한 복도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건물 뒤편에 포탄이 떨어졌다. 와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5년 전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영상으로 남기고 있다.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리아 내전이다.


'사마에게'는 전쟁의 참상과 피란민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한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는 철모르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놀이터다. 아이들은 포성과 총성이 울려도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마주해도 죽음은 익숙하지 않다. 도시는 언제 가족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전쟁 고발 영상에 담긴 위험한 정치성


와드는 폭력의 근원으로 반세기 동안 이어진 아사드 정권을 가리킨다. 정부가 민주화운동을 탄압해 내전이 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는 내부 종족ㆍ종파 갈등과 극단주의ㆍ분리주의 개입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아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혁명에 성공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시리아는 아직 그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권 지지파도 반정권파도 아닌 중간층은 반정권파에 비판적이다. 반정권파 그룹 또한 학살 같은 반인도적 범죄를 서슴없이 자행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대사를 지낸 일본인 구니에다 마사키의 저서 '아사드 정권의 40년사'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돼 있다.


"필자 친구의 조카들은 홈스에서 반정권파 그룹에 납치ㆍ살해됐다. 유뷰트에 강제로 출연해 밝힌 증언이나 고백은 꾸며진 것이었다. 그들은 눈만 드러나는 검은 두건을 쓴 남자들에게 강제로 납치돼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머리가 잘려나갔다. 시민들은 그런 기괴한 모습에 손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와드는 이런 사건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러시아의 공격만 보여준다. 제목과 포스터에서는 사마를 전면에 내세운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적 연출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와드는 사마를 안전한 친정 집에 맡길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마까지 들쳐 업고 촬영을 강행한다. 그것이 희망이자 미래라며….


[이종길의 영화읽기]전쟁 고발 영상에 담긴 위험한 정치성


남편 함자는 언론과 인터뷰함으로써 국제 공동체에 도움을 호소한다. 그런데 알자지라 등 걸프 지역 주요 위성방송국은 객관성을 상실해버린지 오래다. 위성용 휴대전화를 반정권파에 적극 제공해 논란이 일었을 정도다. 반정권파도 날조된 뉴스를 보도하기에 급급하다. 시리아 정부가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한 사실 등을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반정권파는 국제사회로부터 폭넓은 이해와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시리아 민중으로부터 강력한 공감을 얻지 못한다. 아사드 정권 또한 붕괴될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군, 치안부대, 경찰에서 이탈한 사람은 거의 없다.


구니에다는 "시리아 정부가 무장한 반정권 세력과 대결하면서도 일련의 개혁정책 추진안을 갖고 있다"며 "지향하는 내용은 오늘날 아랍 세계 가운데에서도 대단히 선진적인 것임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리아는 여전히 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무력으로 반정권 운동에 나선 세력이 건재하다. 일반 민중은 그들로부터 협박받고 있다. 시리아 정부로부터 압력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무고한 아이들을 볼모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영상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부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극복해나가는 지혜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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