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bar_progress
닫기

글자크기 설정

소설가 고요한 "지독한 퇴고가 내 소설의 힘이죠"

최종수정 2020.10.23 14:37기사입력 2020.10.23 14:37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참 낯선 사랑 이야기 여덟 편

소설가 고요한 "지독한 퇴고가 내 소설의 힘이죠"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어머니와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자. 반지하방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것뿐이다. 어느 날 집 앞의 노래방에서 일하는 도우미 여자가 남자의 반지하방을 찾아온다. 남자가 평소 지켜봤던 여자다. 여자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남자의 방에 정착하는 줄 알았던 여자는 어느 날 일본 북해도로 떠나겠다고 말한다. 여자의 떠나겠다는 말에 남자는 여자마저 접어버린다.'


접었다고? 단편소설 '종이비행기'의 상상력은 낯설다. 발칙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접었다의 의미가 궁금해 고요한 작가(51ㆍ사진)를 만났다. 혹시 해쳤다는 뜻인지 물었다. 자기는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고 답한다.

"죽였다고 하면 무척 잔인하고, 작가의 의도도 그게 아니다. 여자가 북해도에 못 가도록 잡는 거다. 접지만 한편으로 잡는다는 의미다. 리얼리티에 환상적 면을 가미했다. 접었다는 것은 남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남자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종이비행기로 접는다. 여자를 접기 전에도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접는다."


낯선 감수성을 보여주는 '종이비행기'는 브루스 풀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교수와 풀턴 교수의 아내 윤주찬씨의 번역으로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소개됐다. 한국 문학을 약 50년간 번역해온 풀턴 교수는 '종이비행기'에 대해 "무섭도록 아름답고 잔인하게 슬픈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종이비행기'는 9월 출간된 고 작가의 첫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에 실린 단편 여덟 편 가운데 하나다.


주인공이 죽은 아버지의 꿈을 꾼 뒤 꿈 속에서 본 절을 찾아 나서는 '몽중방황'은 '종이비행기'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소설 속 연인의 이야기는 1980년대 'TV 문학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결혼식 날짜까지 잡은 남자는 우연히 들른 절에서 출가를 결심한다. 여인은 어쩔 수 없이 절 앞에 찻집을 차리고 눌러앉는다.


소설 속 남자가 찾는 절은 은당사다. 실제로 작가가 영감을 얻은 곳은 전북 완주군 소양면의 송광사다. 작가는 낯선 공간에 가면 상상력이 무척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불교에 빠져 산사로 자주 가던 때 송광사 길에서 낯선 상상을 했다. "'이런 곳이라면 출가 한번 해볼 만하겠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쁜 벚꽃길이 쫙 펼쳐져 있는 절이었다."


'몽중방황'은 작가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아버지는 평생 큰소리 한번 내지 않은, 온화하고 인자한 분이셨다. 7살 때 아버지와 전북 진안에 있는 절에 갔다. 그때 쓸쓸한 절의 풍경과 어울려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20년이 넘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작가는 27살에 몽중방황을 썼다. 묘하게도 소설을 쓰고 얼마 안 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소설을 계속 써야할지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소설가 고요한 "지독한 퇴고가 내 소설의 힘이죠"

24년이 지나 '몽중방황'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등단이 늦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작가는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 쓰고 20년 만에 등단하고, 다시 4년 만에 첫 소설집이 나오니 가족이 너무 기뻐했다. 소설집 덕분에 행복한 추석을 보냈다. "


어렵게 나온 소설집은 낯선 감수성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9월 초 출간된 책은 한 달 만에 6쇄나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 작가는 독특한 상상력과 문장이 지극히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지독한 퇴고는 작가가 추구하는 글을 쓰기 위한 방편이다. "단편소설 한 편을 쓰고 기본적으로 500번, 보통 1000번을 퇴고한다. 1년에 단편을 3~4편 정도 쓸 수 있는데 단편 하나당 기본 1~2년, 보통 3년 동안 퇴고한다."


작가는 반복적으로 글을 읽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퇴고의 맛'을 느낀다고 했다. "글을 쓰다 보면 속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다 끄접어내야 한다. 그런데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서사도, 문장도, 상상력도 다 마음에 들어야 한다. 만족할 때까지 쓴다. 퇴고를 보면 볼수록 글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또 내가 갖고 있는 상상력 그 이상의 상상력이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다. 그 튀어나오는 한 문장을 위해 퇴고를 한다. 진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기 위해 계속 반복해 퇴고한다."


작가는 내년 여름께 첫 장편소설을 출간한 예정이다. 공간적 배경은 뉴욕, 주인공은 불법체류자인 39세 한국 남성이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답게 완성되는 사랑이 아니라 파격적이고 깨진 사랑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며 인상깊게 읽은 책으로 토머스 하디의 '테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꼽았다. 내년에 출간할 첫 장편소설에서도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뤄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스크랩 댓글0

오늘의 토픽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