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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 작가의 펜팔 대상은 왜 'B'여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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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작가 두 번째 소설집 '바게트 소년병'

[이근형의 오독오독] 작가의 펜팔 대상은 왜 'B'여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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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상력으로 현실 문제 돌파

책을 덮고 난 후 느껴지는 정체불명 해방감이 작품의 장점


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었을까.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중에 왜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을까. 편지에 답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해줬다던데, 왜 이명박 전 대통령이어야 했을까. 작가 오한기의 두 번째 소설집 ‘바게트 소년병’ 중 ‘펜팔’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편지를 주고받는 오한기의 이야기다. 이 작품 하나만 접했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 중에 감옥에 있는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뿐이고 그를 다루는 게 가장 리스크가 적을 테니까. 그리고 그는 아주 흥미로운 캐릭터는 맞으니까.


하지만 ‘바게트 소년병’,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 ‘사랑하는 토끼 머리에게’ 등 작품까지 읽고 나자 반드시 MB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오한기 작가 소설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오 작가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글이 뻗어나가는 것 같다.) 오한기 월드에서는 MB일 수밖에 없다. MB는 "이게 다 거짓말인지 아시죠?",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가훈이 정직" 등 거짓도 완벽하게 진실이라 믿고 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주인공이어야 만이 오한기의 무차별적으로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받아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은 그의 상상력을 담을 플랫폼으로 부적절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문재인 전 대통령도 무거운 사람들이니까. 그만이 아주 솔직하다. 비록 그것이 자신만 믿는 거짓일지라도.


오한기의 소설들에는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많다. 유령이 핸드폰 속에 존재하고, 갑자기 ‘팽’자가 새겨진 거북이들이 많아지고, 바게트를 가진 소년이 캐비닛에 살고 있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리얼리즘이다. 아주 소시민적인. 그는 살아가면서 본인이 느꼈던 화나 문제의식을 상상을 통해 해소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아주 힘들게 맞서고도 결국 패배하는 상황을 무차별적인 상상의 세계로 끌고 와 돌파해 낸다. 사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소설이 시작하는 순간과 끝나는 순간 주인공의 처지는 거의 비슷하다. 결국 제자리다. 하지만 제자리로 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측불가능하게 뻗어나가는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우리는 "이게 뭐야" 하면서도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된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뭔가 묵혀둔 말을 기어코 해버린 것 같은 해방감을 느낀다. 그 해방감이 기꺼이 시간을 들여 오한기의 세계를 여행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다.


PS-쓸데없는 자랑. 나는 ‘펜팔’에 소개된 단편영화 ‘인간 쥐의 습격’을 본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이 작가는 옛날부터 그랬다.


[이근형의 오독오독] 작가의 펜팔 대상은 왜 'B'여야만 했을까


바게트 소년병 / 오한기 / 문학동네 / 14500원



이근형 기자 ghlee@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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