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달러는 국제 무역과 금융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까?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비상임 선임연구위원인 헤수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Jesus Fernandez-Villaverde) 교수는 지난 2일 AEI에 기고한 글에서 ‘조정(coordination)’ 역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 국가의 경제 규모나 펀더멘탈이 아니라 ‘조정 균형’과 역사적 관성이 지배통화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비야베르데 교수는 “경제 펀더멘탈은 통화 패권의 무대를 마련하지만,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역사이며 한번 결정되면 바뀌기 어렵다”며 “달러는 ‘조정 균형’을 깨뜨릴 만큼 큰 충격이 오기 전까지는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트럼프 정부가 부과하고 있는 관세 수준이나 중국과의 패권경쟁은 아직 그 정도의 충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흔히들 달러 패권의 이유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정했던 브레턴우즈 체제, 미국 경제 규모, 깊고 발달한 금융시장의 결합을 거론한다. 저자는 "맞는 말이지만 충분한 설명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영국의 경제 규모는 이미 1990년 무렵 미국보다 작았지만 파운드화는 1940년대까지 세계의 지배적 통화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최근 저자는 조 아바디(Joe Abadi), 대니얼 산체스(Daniel Sanches)와 함께 쓴 논문 ‘국제 통화의 지배(International Currency Dominance)’에서 그 해답이 ‘조정(coordination)’에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태국의 한 수출업자가 달러 결제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보자. 그의 선택은 나중에 그 달러를 쓸 수 있는지에 달려 있고, 이는 베트남이나 독일에 있는 공급업체들이 달러를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다시 각자의 거래 상대방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단 전 세계가 달러를 중심으로 조정되면, 어느 누구도 그 체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벗어난다는 것은 더 적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통화를 보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 결과 국제 통화 체제는 세 가지 유형으로 귀결될 수 있다. 첫째, ‘고전적(classical)’ 체제에서는 모두가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다. 미국 상품을 사기 위해 달러를, 유럽 상품을 사기 위해 유로화를 보유하는 식이다. 둘째, ‘지배 통화(dominant currency)’ 체제에서는 하나의 통화가 자국과 무관한 거래까지 포함해 모든 곳에서 사용된다. 셋째, ‘다극(multipolar)’ 체제에서는 여러 통화가 국제적 교환 수단으로 공존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고전적 체제는 불안정하다. 아주 작은 충격만 있어도 지배 통화 체제나 다극 체제로 기울게 된다. 그러나 일단 지배 통화가 등장하면, 이를 밀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조정’이 자기강화적이기 때문에 그 균형은 안정적이다. 이것이 통화 패권이 수십 년간 지속되는 이유다. 경제 펀더멘탈이 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조정 균형' 자체가 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자국 통화를 국제화하기 위해 국채의 실질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경제는 자연스러운 이점을 갖는다. 외국 투자자들은 규모가 큰 경제권과 거래할 기회가 더 많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더 낮더라도 그 나라의 통화를 보유하려 한다. 규모는 지배력을 낳고, 지배력은 지속성을 낳는다.
저자는 여러가지 반대 시나리오도 분석했다. 예를 들어 무역전쟁이 달러의 지위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미국과 나머지 세계가 영구적이고 상호적인 30%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그 효과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과의 교역은 줄어들지만, 세계는 여전히 달러로 결제한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 경험과도 부합한다. 달러와 파운드화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보호무역 강화 시기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중국의 부상이 체제를 바꿀 수 있을까?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 등 자본계정 자유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만 중국이 결제 인프라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금리 경쟁에 나선다면, 위안화는 지배적이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보조적 국제 통화가 될 수 있다. 기존 지배 통화가 가진 조정상의 이점은 그만큼 강력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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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헤수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는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비상임 선임연구위원이다. 그는 또한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하워드 마크스 석좌 교수(Howard Marks Presidential Professor of Economics)로 재직하고 있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의 주요 연구 분야는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경제사이다. 최근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통화경제학의 여러 쟁점, 동태적 균형 모형의 정식화와 추정, 그리고 유라시아 지역에서 ‘분절된 토지(fractured land)’가 국가 형성에 미친 역사적 영향을 다루고 있다.
정재형 경제정책 스페셜리스트 jj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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