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한 방보다 가치사슬 통제"
"플랫폼·수직계열화 기준 M&A 확산"
미국 머크(MSD)가 항암 바이오기업 레볼루션 메디신스 인수 협상을 중단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인수 금액을 둘러싼 이견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업계에선 빅파마들의 기업 인수합병(M&A) 전략이 단일 블록버스터 확보 중심에서 플랫폼과 생산·공급망 역량 확보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외신 등에 따르면 MSD는 레볼루션 메디신스 인수합병과 관련해 40조원 안팎 수준의 거래를 검토했지만 양측은 기업가치에 합의하지 못했다. 레볼루션 메디신스는 췌장암과 비소세포폐암(NSCLC)을 타깃으로 하는 경구용 pan-RAS 억제제 후보물질 RMC-6236(다락손라십)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임상 3상이 진행 중인 유망 자산이지만 시가총액이 이미 227억 달러(약 32조원)에 육박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을 경우 빅파마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가격대가 형성된 것이 결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시장에선 이번 사례를 대형 제약사의 자금 부족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그룹 EY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생명과학 분야 인수합병 규모는 2400억달러(약 342조원)로 전년 1300억달러(약 185조원) 대비 81% 증가했다. 평균 거래 규모도 80% 이상 확대됐다. 특허 절벽에 직면한 글로벌 제약사들이 여전히 대규모 인수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제약 M&A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는 이달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제약사들의 인수 전략이 단순한 블록버스터 신약 확보를 넘어 플랫폼 기술과 제조 공정 통제권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제 경영진은 연구개발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는 가치 사슬(Value Chain) 중 어느 부분을 직접 소유해야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며 원료 확보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내재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직 계열화'를 올해의 핵심 트렌드로 꼽았다.
이번 MSD와 레볼루션 메디신스의 협상 결렬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레볼루션은 유망한 후기 임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했지만 여러 질환에 반복 적용 가능한 플랫폼 확장성이나 제조 공정 전반을 장악할 수 있는 인프라 측면에선 MSD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수십조 원을 투입하는 M&A의 경우 단일 신약 후보보다는 약물 전달 기술이나 자체 생산 플랫폼처럼 여러 파이프라인에 반복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는지가 핵심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금 뜨는 뉴스
이런 가운데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올해 글로벌 M&A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빅파마를 겨냥한 '맞춤형 설계'에 기반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 회장은 올해 JP모건헬스케어콘퍼런스에서 "단순히 임상 단계가 높은 약보다 자사 포트폴리오를 즉각 강화할 수 있는 대체 논리가 명확한 플랫폼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배샌트 내러시먼 노바티스 최고경영자(CEO)도 "자사가 구축한 생태계에 완벽하게 끼워 맞출 수 있는 기술 조각, 이른바 '볼트온(Bolt-on)' 자산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박정연 기자 j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