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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영웅은 어쩌면 사회가 만든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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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거인들'
20세기 여덟 지도자가 보여준 리더십의 명암
혼돈의 시대를 이끌 우리 시대의 영웅은

현실의 전쟁이 다시 일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관세 전쟁과 기술 봉쇄는 국경 없는 충돌로 확장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합의는 더디고, 국제 질서는 균열을 드러낸다. 이런 난세에서 대중은 언제나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누가 이 혼란을 끝낼 것인가. 세계 곳곳에서 다시 '강한 지도자'가 호명되고, 트럼프와 푸틴 같은 이름은 그 욕망의 표면에 떠오른다. 이들이 영웅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지금 세계는 다시 영웅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가.

[이 책 어때]영웅은 어쩌면 사회가 만든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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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거인들'은 바로 이 질문을 과거로부터 끌어올린다. 이 책은 20세기 세계 질서를 재편한 여덟 명의 지도자를 통해 한 개인이 역사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동시에 역사가 개인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묻는다. 윌슨, 레닌, 히틀러, 처칠, 루스벨트, 간디, 벤구리온, 마오. 저자 마이클 만델바움은 이들을 영웅이나 악인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대신 동일한 분석의 틀 위에 올려놓고, 위대한 리더십이 언제 성취가 되고 언제 재앙이 되는지를 차분히 추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위대함'이라는 단어를 도덕적 판단에서 분리해낸다는 점이다. 여기서 위대함은 선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설계자와 대량 학살의 책임자가 같은 장에 등장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불편하지만, 이 불편함이야말로 책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태도다.


여덟 명의 지도자는 모두 군주제가 약화되거나 붕괴된 이후, 격변의 시기에 등장했다. 이들은 혈통이 아니라 동원과 설득, 혁명과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다. 공통적으로 자신감과 에너지, 집요함, 그리고 대중을 사로잡는 언어를 지녔다. 그러나 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리더는 위기를 제도로 흡수했고, 어떤 리더는 위기를 동원해 파괴로 밀어붙였다. 차이는 개인의 성격보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제어할 장치의 존재 여부에 있었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리더 개인의 도덕성이나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결단이 확대 재생산되는 경로, 즉 제도와 조직, 대중의 열망이 결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같은 자신감과 결단력을 지닌 지도자라도, 그것이 헌법과 의회, 언론과 사법의 틀 안에서 작동할 때와, 그 틀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발휘될 때의 결과는 전혀 다르다. '20세기의 거인들'은 리더를 평가하기보다, 리더를 떠받친 조건을 해부함으로써 권력의 작동 원리를 드러낸다.


루스벨트와 마오는 이 대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두 사람 모두 국가적 위기 속에서 장기 집권하며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위기를 제도와 정책으로 번역했고, 마오는 위기를 혁명의 이름으로 증폭시켰다. 한쪽은 제도를 강화했고, 다른 한쪽은 제도를 압도했다. 이 대비는 특정 인물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리더십이 허용될 때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예시에 가깝다.

[이 책 어때]영웅은 어쩌면 사회가 만든 '증상'이다 이 책은 리더 개인의 도덕성이나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결단이 확대 재생산되는 경로, 즉 제도와 조직, 대중의 열망이 결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루스벨트와 마오쩌둥은 이 대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하지만 이 책은 특정 쌍의 비교에 머물지 않는다. 처칠은 국가 생존의 언어로 대중을 결집시켰고, 간디는 폭력적 동원을 거부함으로써 도덕적 권위를 구축했다. 벤구리온은 생존을 위해 냉혹한 결단을 선택했고, 히틀러는 분노와 피해의식을 파괴적 카리스마로 전환했다. 여덟 명의 리더십은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에게 묘한 불편함을 남긴다. 영웅을 갈망하는 마음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그 욕망이 언제 정치적 선택으로 전환되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20세기의 거인들은 모두 대중의 기대와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 기대가 제도에 의해 조정될 때는 국가의 회복으로 이어졌고, 개인에게 집중될 때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향했다. 이 차이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선택의 갈림길이다.


이 지점에서 '20세기의 거인들'은 현재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리더가 가능해지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영웅은 선택이 아니라 증상일지도 모른다. 제도가 무력해 보일수록, 합의가 느릴수록, 대중은 결단하는 얼굴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얼굴이 구원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그를 둘러싼 구조에 달려 있다.


이 책은 공동체를 이끄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리더십이 언제 공동체를 살리고, 언제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난세에 영웅을 부르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우리는 이 질문을 더 자주 되묻어야 한다. '20세기의 거인들'을 오늘 다시 읽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그들이 설계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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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거인들 | 마이클 만델바움 | 홍석윤 옮김 | 미래의창 | 512쪽 | 2만90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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