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강제상장 90년대 벤처 붐
이제는 혁신·유망기업 육성할 때
한국경제는 오랫동안 '돈이 부동산으로만 흐르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가계 자산은 부동산에 집중되고, 주식시장은 투기시장으로 오해받으며 불신의 대상이 돼 왔다. 자본시장을 경시했던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육성됐고 이들을 통해 산업화와 선진국 진입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광복 이후 태생적으로 한국경제는 늘 '자본시장에 돈이 부족한 경제'였다. 이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금융시장은 때로는 무리하고 과격한 방식까지 동원하며 자본을 만들어 냈는데 그 과정은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자본시장 형성의 역사로 남는다.
첫 번째 자금 유입은 1970년대 중반 강제 상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의 기업들은 필요한 운영자금의 대부분을 사채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1970년대 초 사채금리가 심하게는 100%에 이르자 한계에 달한 기업들은 정부에 구원을 호소했다. 정부는 기업들이 가진 사채를 전부 동결하고, 이자를 10% 초반대로 하향 조정하는 극단적인 8·3 사채 동결 조치를 내린다. 이후 정부는 자본 부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대기업들을 증시에 강제적으로 상장시켜 국민의 자금을 기업자본으로 전환한다. 이 조치는 삼성·현대·SK 등 한국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두 번째 자금 유입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IT·벤처·통신 등 3차산업혁명과 연결된 새로운 산업 기반을 만드는 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면서 이루어졌다. 정책들은 주식·채권 직접 금융시스템 개편, 외국인투자자들에 대한 주식시장 완전 개방과 맞물려 큰 힘을 발휘했고, 그 덕분에 이때부터 한국은 IT 강국이라는 칭호를 받게 됐다. 네이버·다음(카카오)·엔씨소프트 등 디지털플랫폼 기업들의 탄생, 삼성전자 등 반도체 분야 급성장, SK텔레콤·KT 등의 통신기반 확장 등은 모두 IMF 이후 산업육성 정책과 어우러진 자본시장의 급격한 확대 속에서 이루어진 성취였다.
강제와 위기라는 다소 비정상적 조건에서 발생한 이 두 차례의 자본시장 확대가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온 숨은 엔진이 됐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시중자금이 다시 부동산으로 회귀하며 주식시장은 만성적 저평가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에 미래성장성과 확장성이 계속 낮아져 왔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도의 정상화를 통해 세 번째 기회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2025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상법개정은 증시를 억눌러 왔던 지배구조 리스크에 제도적 제동을 걸었고 외국인투자자들과 국내 장기 투자자들이 다시 한국증시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되고 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주가 누르기 방지법' 논의 등 증시 활성화 정책이 이어지며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입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주가지수는 불과 1년 전의 2배인 5000포인트 수준에 이르렀다.
거버넌스 문제로 'Buy Korea'를 꺼렸던 외국인투자자, 세금 문제로 주식 장기투자를 꺼렸던 국내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증시자금 유입은 향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저평가가 다소 완화된 이제는 증시로 들어오는 자금이 기존의 주가를 올리는 데만 쓰여서는 안 된다. 이 자금들이 혁신적인 기업들과 유망한 산업을 새롭게 육성하는 데 쓰일 수 있도록 증권업계, 거래소, 정부 정책들이 혼신의 힘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다면, 주식시장은 다시 한번 한국 경제 재도약의 공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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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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