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지수 상위 20% 127점…단일질환·시술 최대 통증 '12.7배'
거부의향 84%에도 실제중단 17%뿐…"제도 한계 '사회적 합의' 때가 왔다"
'개인화' 사전연명의료의향서…환자 자기결정권 강화 필요
제도 사각지대·이행 시점 문제 해소…돌봄 연속성 확보해야
연명의료 당사자의 고통을 세계 최초로 산출했더니, 삼차신경통 극한 통증의 최대 12.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84.1%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선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단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공동 연구를 통해 환자의 뜻이 의료 현장에서 보다 온전히 구현되도록 연명의료결정제도의 한계를 보완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현행보다 개인화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제도 사각지대와 이행 시점 문제 역시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봄 연속성 확보 역시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인로 한은 경제연구원 인구노동연구실 차장은 11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개최한 건보공단과의 공동 심포지엄에서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환자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그리고 보완방안' 공동 연구(김태경·이인로·정종우·유인경·한은정·박영우) 발표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당사자 고통에 주목" 상위 20% 127.2점…단일질환·시술 최대 통증 '12.7배'
이번 연구에서 세계 최초로 산출한 '연명의료 고통지수'에 따르면 연명의료 환자의 신체적 고통 점수는 평균 35점이었다. 이는 대상포진(6점), 심폐소생술(8.5점), 삼차신경통(10점) 등 단일 질환이나 단일 시술에서 경험하는 최대 통증의 약 3.5배에 이른다. 연명의료 고통지수 상위 20%에 해당하는 환자가 겪는 고통 점수는 127.2점으로 이보다 훨씬 큰 약 12.7배 수준에 달했다.
연명의료 고통지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등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지정한 시술의 고통 강도와 시행 빈도를 동시에 반영하도록 설계됐다. 시술별 통증 강도에 시행 빈도를 가중해 환자가 실제로 경험하는 총 신체적 고통을 종합 지수로 산출했다. 이 차장은 "연명의료 대상자는 답변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해당 시술을 받고 회복한 환자들의 답을 듣고 추정한 고통으로, 보수적으로 측정했다"며 "이번 결과는 고강도 시술이 집중된 특정 환자군이 매우 극심한 신체적 부담을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환자 선호와 의료 현실의 괴리도 상당했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거부 의향을 밝혔으나, 실제 65세 이상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쳤다. 이 차장은 "적지 않은 고령 환자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임종 직전까지 연명의료 시술을 경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환자 수는 2013~2023년 중 연평균 6.4%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라는 추세적인 요인(약 60% 기여) 외에도, '사전 논의→의료기관 선택→임종기 판정→중단 이후 돌봄'이란 연명의료 결정 전 과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제도적·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이 차장은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기피하는 문화가 임종기 치료 방향을 사전에 문서화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지고 있고, 현행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연명의료 중단 여부만 일괄 선택하는 구조여서 환자마다 다른 가치관과 개별 시술에 대한 세부 선호를 담기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의료기관 선택 단계에서도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 필수적인 '의료기관윤리위원회'·'공용윤리위원회'에 접근이 힘들다는 점도 제약 사항"이라고 분석했다.
현행법에서 '회생이 불가능하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로 정의되는 '임종기' 판정이 어렵다는 점, 연명의료 중단 이후 돌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차장은 "임종 1개월 내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를 보면, 약 40%는 임종 직전 1주일 이내가 돼서야 중단이 결정됐다"며 "이들은 그 한 달 동안 평균 6.8개의 연명의료 시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환자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의 경제적 부담 확대도 사회적인 문제로 꼽혔다. 연명의료 환자 1인당 평균 생애말기 의료비(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의료비, 건강보험부담금 제외 본인부담금)는 2013년 547만원에서 2023년 1088만원으로 연평균 7.2%씩 늘어 약 2배가 됐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40% 수준이다. 환자 가족은 의료비 외에도 간병인 고용, 휴직·퇴직 등으로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겪을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처럼 고령 사망자 중 연명의료 시술을 받는 비율이 70% 가까이 유지될 경우 건강보험이 지불하는 연명의료비 지출은 2030년 3조원에서 2070년에는 16조9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설문 결과를 반영한 15% 수준까지 떨어진다면 비용은 약 3조6000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차장은 "절감한 비용을 호스피스 등 돌봄 시설과 같은 곳에 재배치한다면 환자의 생애말기 삶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 선호 구체적 기록,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항목 늘려야
연구진은 환자의 구체적 선호와 가치관을 의료현장에 더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보다 개인화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식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 서식에는 ▲법정 연명의료 시술에 대한 선택적 거부 ▲현행 법정 연명의료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생명 유지와 밀접한 인공영양공급에 대한 의사 ▲장기기증 의사 ▲의료결정 대리인 지정 항목을 포함했다. 이 차장은 "임종 장소·돌봄 방식 등 '희망사항'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공간을 둬, 생애말기 과정을 미리 숙고하고 개인 선호를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다만 장기기증 의향, 인공영양공급 중단 등은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이미 법정 연명의료로 규정된 시술별 선택 항목부터 현행 서식에 단계적으로 반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재정적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차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한 채 의사 표현이 불가능해진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환자가 평소 신뢰하는 사람을 사전에 지정하는 '의료결정 대리인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점차 정착되고 있는 만큼, 현재 '임종기'로 한정된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점을 조정할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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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장은 "연명의료 제도 개선의 목표는 연명의료 자체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의 마무리 방식을 미리 충분히 숙고할 수 있도록 돕고, 그에 대한 자기결정이 마지막까지 존중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며 "향후 연명의료 논의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생명 존중의 가치와의 조화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생애말기 의료 문제 역시 향후 논의돼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짚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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