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평당 726만원 제시…조합 “근거 부족”
분양가도 2,400만원 vs 2,850만원…입장차
특별건축구역 지정에도 착공 일정 불투명
조합 “자료 없으면 협상 불가…부담만 늘어”
현대건설 “시장 반영 조정…아직 협상 단계”
전문가 “구조적 문제…결국 타협 수순”
지난 8일 광주 서구 광천동 재개발 구역 담벼락에는 ‘위험 건축물 접근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약 3조원 규모로 추진되는 사업지로, 최고 45층 아파트와 부대시설, 공원 등을 포함해 5,000여 세대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송보현 기자송보현 기자
지난 8일 오전 광주 서구 광천동 재개발 현장. 철거를 앞둔 구역은 이미 주민 대부분이 떠나 적막이 감돌았다. 오래된 연립주택과 다세대 골목은 텅 비어 있고, 빈집마다 녹슨 대문만 남아 있다. 담벼락과 전봇대에는 '주거세입자 이주 재공고문'이 붙어 있을 뿐이다. 광주 최대 규모인 5,000세대 재개발 부지가 이처럼 멈춰선 채 조용하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은 "여기까지 오는데도 몇 년이 걸렸는데, 공사비 문제로 또 멈춰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대가 공사비를 6,800억 올린다고 하는데 근거나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며 "일반분양가보다 조합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면 누가 받아들이겠느냐"고 했다. 이어 "그래서 현장이 이 상태로 멈춰 있는 거다. 사람은 떠났지만 일이 못 움직여서 적막한 거다"라고 덧붙였다.
13년째 제자리…특별건축구역 지정에도 여전히 멈춰선 사업
9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이 사업은 지난 2012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13년째 착공이 미뤄져 온 프로젝트다. 2015년 조합 설립 인가, 2019년 사업시행 인가와 2023년 관리처분 인가까지 마쳤지만, 2021년 기존 시공사 계약 해지와 2022년 새 시공사 선정 과정이 이어지며 지연됐다.
최근까지 부지 내 점유자 문제로 소송이 이어졌으나, 지난 9월 광주지법이 조합의 부동산 인도 소송을 인용하면서 철거 여건이 마련됐다. 이어 10월 광주시가 이 구역을 지역 내 첫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건폐율·용적률을 완화했지만, 공사비와 분양가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사업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조합은 올해 철거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 착공, 2029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합원 "수용 불가"· "집단행동 고민" 절박감 확산
조합은 2023년 가계약 당시 평당 588만원 수준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최근 현대 측이 평당 726만원 공사비(총 6,800억원 규모)를 제시했고, 조합은 "증액 폭이 큰 만큼 산출 근거가 필요하다"며 내역 제출을 요구했지만 "자료가 없다"고 주장한다. 분양가 협상에서도 현대건설은 미분양 리스크를 이유로 평당 2,400만원대 제시했으나, 조합은 2,850만원을 유지하며 대치하고 있다.
조합 측 관계자는 "지금 중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협상"이라며 "근거 없이 증액만 요구하면 조합원 부담만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10차례 넘게 협의했지만 내역이 없어 논의가 어렵다"며 "하이엔드 기준으로 사업을 추진했는데 대기업이 이익만 가져가고 조합원 부담이 커지는 구조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조합원 설득을 위해서도 객관적 자료가 필요하다"며 "사업 중단 방향으로 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조합원 의견도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물가 상승 반영이 어떻게 계산됐는지 근거가 필요하다"며 "조합원 분양가가 일반 분양가보다 비싸지면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가계약도 계약인데 왜 지켜지지 않느냐는 말이 많다"며 "초기에는 협상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치다'는 의견이 강하다"고 했다. 이어 "웬만하면 현대와 사업을 하고 싶지만 막연하게 기다릴 수는 없다"면서 "본사 항의 방문 같은 집단행동까지 고민하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현대건설 "아직 확정안 아냐… 협상 단계"
현대건설은 공사비 증액 배경과 관련해 "2022년 시공사 선정 이후 실제 착공 시기인 2026년 이후까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이 크게 상승하면서 건설환경이 급변했다"며 "시장 상황이 반영된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증액 산정 자료 공개 논란에 대해서는 "올해 7월 공사비 관련 공문 발송 이후 9차례 협상 과정에서 공사비 증감내역과 변경 사유를 서면 및 PT자료 형태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조합이 요구하는 세부 산정내역에 대해서는 "총액입찰 방식으로 계약돼 항목별 세부 내역을 별도로 제출하게 돼 있진 않다"면서도 "도시정비법상 공사비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면 세부 자료 제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협상 진척도에 관해서는 "공사비 부문에서 VE(가치공학) 및 마감재 조정을 통해 협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며 "조합과 원만한 합의를 위해 지속해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 지연으로 조합이 목표로 하는 내년 하반기 착공 일정이 미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합과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착공 시기를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이엔드 적용 기준과 관련해서는 "본사 브랜드심의위원회에서 단지의 입지와 사업성, 상징성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 평가해 적용한다"며 "지역 내 상징성과 사업 조건 등이 고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단순 가격 다툼 아닌 구조적 문제…타협은 불가피
광주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 갈등을 "단순 가격 다툼이 아닌 제도·시장 구조의 문제"로 진단했다. 박해인 해인부동산 대표는 "건설 원가 상승으로 시공사 증액 요구는 이해가 가지만, 분양시장 여건과 입지·브랜드 기대치 괴리, 재개발 비용 전가 메커니즘이 복합 작용하고 있다"며 "구조적 문제 위에 개별 분쟁이 겹친 현시대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협상 전망에 대해서는 "현대건설의 '미분양 리스크 회피'와 조합의 '사업성·조합원 부담 보호'가 맞물려 완전 양보가 쉽지 않다"면서도 "착공 지연 시 양측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타협으로 수렴될 수 있다. 조합장의 협상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사비가 현대 측 제시대로 확정될 경우에 대해선 "조합원 분양가(분담금)가 일반 분양가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거의 현실"이라며 "일반분양가 인하 + 공사비 증가로 조합원 부담이 상승, 6~7,000억 증액 시 조합원당 1억5,000만 원 수준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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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 '추가 분담금이 크면 매도' 분위기가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작년까지 프리미엄 2억 이상 거래가 있었지만, 철거 지연과 언론 보도로 거래가 주춤할 뿐 매물 증가나 마이너스 프리미엄은 없다"며 "10년 이상 기다린 조합원들이 입지·세대수 매력을 포기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호남취재본부 송보현 기자 w3t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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