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위 국가 모습에 공포…현실감이 없었다
광장에 모여 연대감, 계엄 재연 땐 또 달려가
공동체와 민주주의 지키는 건 우리 자신 자각
45년 만의 비상계엄, 1년 후 만난 시민들은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1년 전 울려 퍼지던 구호와 발걸음, 차가운 쇠파이프 소리와 경찰 확성기 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듯한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비상계엄 선포라는 믿기 어려운 발표가 나왔던 그 날, 시민들은 무언가 큰 균열이 생겼음을 직감한 표정으로 이곳에 모여들었다.
거리 곳곳에는 그날 현장에 서 있던 시민들이 남긴 기억의 잔향이 남았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여전히 심장이 빨라진다는 이들도,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마음 한구석에 작은 금이 남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를 응시하던 경찰관의 눈빛 계속 떠올라"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정수인씨(31)는 일과를 마치고 귀가해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던 중 계엄 소식을 접했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국회로 향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버스에 올랐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은 위험하다며 만류했지만, 함께 사는 여동생에게 "부모님껜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한 뒤 국회로 향했다.
그는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며칠간 잠을 설치거나 뉴스를 수시로 확인하는 등 이른바 '계엄 불안증'을 겪었다.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당사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계엄이 다시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 그는 "경찰관과 군인들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투입됐겠지만, 그날 마스크 너머로 나를 응시하던 그 눈빛이 계속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정씨에게 계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 1년이 지난 시점, 정씨는 '공감의 부재'를 우려했다. 그는 "계엄이 잘못됐다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며 "청산할 것은 확실히 청산해야 공동체가 화합할 수 있는데, 계엄을 두고 정치적 대립 구도가 반복되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시민 위에 선 국가의 모습에 공포심 느껴"
당시 자정 무렵 국회에 도착한 최희윤씨(37)도 "사람들이 계엄 철폐를 외치고 있었고, 특수부대 군인들이 총을 든 채 담장을 넘는 걸 보며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며 "그 순간엔 '국가가 마음먹으면 이렇게 한순간에 시민 위에 서는구나'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고 전했다.
최씨는 '국회 담장 밖 애국가'를 당시 기억 중 가장 또렷했던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담장 바깥에서 시민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계엄 전주에 '소년이 온다'를 읽었는데, 광주 시민들이 그 상황 속에서 애국가를 불렀다는 묘사가 떠올랐다"며 "담장 안과 밖이라는 물리적 경계가 있었지만, 같은 마음이라는 걸 느꼈고 그 순간 울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이 할 만했다"는 말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가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런 발언이 사적 대화에서 가벼운 톤으로 나온다는 게 더 무섭다"며 "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 권한을 쥔다면 계엄은 언제든 다시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1980년 계엄을 모르던 세대가 기록을 통해 그 무게를 알 수 있었듯, 이번 경험도 남아야 한다"며 "그래서 나도 목격자로서 기록에 남기로 했다. 만약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또 나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계엄 세력에 대한 확실한 처벌 이뤄져야"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재학생 정승윤씨(25)는 지난 1년간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 "'계엄 청구서'가 여전히 남아있고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며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확실한 결과가 나온 게 없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변화는 계엄 세력에 대한 명확한 처벌과 청산"이라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씨는 도서관이 아닌 광장으로 향했다. 성적 장학금을 목표로 복학했지만, 책상 앞에만 앉아있을 수 없었다. 정씨는 "계엄령 이후 많은 시민이 광장에 모이는 것을 보며 연대감을 느꼈고, 이 중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가장 먼저 달려와 대열의 맨 앞에 서는 것을 보고 큰 부채의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먼 훗날 또다시 계엄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고민 없이 다시 현장으로 나갈 것"이라며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있겠지만, 미래에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부당한 상황에는 끝까지 맞서는 게 옳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
당시 법조인으로 현장을 찾았던 오현희 변호사는 그날을 민주주의 시스템을 향해 의심을 품어본 적 없는 자신의 신념에 위기감을 주는 순간으로 기억했다. 오 변호사는 "한 사람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구멍과 틈새가 있다는 걸 목격한 순간"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오 변호사는 동시에 시민의 연대감도 피부로 체감했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당시 새벽까지 남아 국회 앞을 지키던 시민들을 회상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달려와 목숨을 내놓고라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장갑차 앞에 앉기도 하고, 온몸으로 막아서는 시민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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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치와 생활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우리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우리 자신이라는 자각을 깊게 하게 됐다"며 "바쁘더라도 내 일을 잠깐 접고 시위를 나가고, 잘못된 상황도 잘 고쳐나갈 수 있다는 공동체의 자신감과 회복탄력성을 갖게 된 계기"라고 덧붙였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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