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예산 10조원 시대, 한국의 선택
피크코리아 넘어설 AI 총력전
국가의 책임감, 민간의 지혜로 넘어야
아침 출근길에 지켜봤던 그 장면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하철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는 한 손으로 흰 지팡이를 잡은 채 앞길을 개척했다. 다른 손으로는 계단 손잡이를 잡고 균형을 유지했다. 그의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본 이유는 할아버지 뒤를 따르던 할머니 때문이다. 가냘픈 체구의 할머니는 할아버지 허리춤을 잡은 채 그를 의지해 계단을 올랐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 발 한 발 위태로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계단에서 구를 수도 있는 상황. 절박함마저 느껴지는 그 장면은 '가장의 무게' 그 이상의 여운으로 다가왔다. 그날 노부부의 모습이 뇌리에 남은 이유는 내년도 예산안에 담긴 우리 사회의 절박함과 무관하지 않다.
내년 예산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 첫 번째 예산이다. 관련 투자도 대폭 늘었다. 국가 역량을 AI에 집중하겠다는 집념이 담겼다. 정부가 제출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AI 관련 예산은 10조1398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3배로 늘어난 규모다.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특정 분야에 비대칭적으로 집중 투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고수익 구조의 잠재적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특정 영역에 힘을 실었다.
국회 예산 심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AI 예산 상당수는 보류됐다. 기존 예산에 AI를 덧붙여 증액하는, 용어만 앞세워 시선을 끄는 'AI 워싱'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여러 문제 속에서도 국가 차원에서 AI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력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이른바 '피크코리아'에 맞서 '뭐라도 해보자'라는 국가전략이 이번 예산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를 결심하며 당시로선 초유의 거대 사업이었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선택, 외환위기 속에서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를 마련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IT 산업 육성에 나섰던 선택도 국운을 걸어야 했던 절박함이 그 시작이었다.
계단을 오르던 두 노인의 모습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절실함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이다. 계단 끝을 향해 올라가는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눈 역할을 해줬다. 갈림길에 서거나,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공동 운명체였다. 어느 한쪽의 힘으로는 난관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를 의지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새해 AI 예산이 적재적소에 활용되려면 우린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정부의 과감한 투자는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만 기술의 구체적 지형을 읽는 것은 결국 현장을 책임지는 민간과 전문가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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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거나 민간의 투자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파른 계단'을 안정적으로 오를 수 없다. 갈 길을 알려주는 눈도, 기어이 올라가는 다리도 필요하다. '국가 범용AI(AGI) 연구소'와 같은 대형 사업은 정부 주도로 하더라도, IT 관련 민간 기업의 인사와 함께 로드맵을 마련해야 더욱 안정적인 추진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신중하되, 용기를 갖고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얘기다. 아침 출근길의 두 노인이 서로에게 힘이 돼주며, 무사히 계단 위로 오르는 것처럼….
나주석 정치부 차장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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