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파트 덮친 화마에 시민들 '망연자실'
휠체어·보조기 사용하는 고령자 많아 피해 확산
"처음엔 그저 폭죽 소리인 줄 알았어요. 아파트 단지 전체가 보수 공사 중이어서 주민 대부분이 창문을 닫아뒀고, 그래서 화재 경보도 듣지 못했습니다."
2000세대 주거지에 순식간에 불길 확산…고령 거주자 대피 더 어려웠을 듯
수십 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여겨지는 화재 사고가 발생한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아파트에서 가족과 40년 이상 살아온 60대 여성 응은 26일 오후 화재 상황을 떠올리며 AFP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00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 19층에서 살다가 화재 발생 후 황급히 대피했다.
AFP는 현장에 모인 시민들이 실종된 가족이나 지인의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충혈된 눈으로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고 전했다. 60대 남성 주민 위엔은 "이 동네에는 휠체어나 보행 보조기를 사용하는 고령 주민이 많은데, 다들 당장 잘 곳도 없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화재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못해"…시민들 '망연자실'
인근 주민들은 화재가 확산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무력감과 비통한 심정을 호소했다. 50대 주부 셜리 찬은 "불이 나는 것을 지켜봤지만,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며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57세의 타이포 주민은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으나, 노인이든 아이든 모든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미스 홍콩 출신 리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할머니의 집이 불타버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봤다"면서 "정말 가슴 아픈 날"이라고 적었다. 그는 "오늘 모든 희생자, 부상자, 그리고 집을 잃은 모든 분께 깊은 애도와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당국은 화재 진압 작업과 동시에 대형 버스를 이용해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인근 아파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도 대피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진화 작업을 위해 주변 고속도로가 폐쇄됐고, 일부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화재 위험 경고에도 계속 썼던 대나무 비계가 '불쏘시개'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며, 현지 경찰은 피해 아파트의 창문을 폴리스틸렌 보드가 막고 있어 화재가 더욱 빠르게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특히 건물 보수에 사용된 대나무 비계와 자재를 타고 주변 건물까지 불이 확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사 중인 건물 외벽을 따라 설치하는 비계는 현재 통상적으로 금속 제품을 쓰지만, 홍콩에서는 여전히 대부분 '대나무 비계'가 사용된다. 대나무가 금속보다 가볍고 저렴한 탓에 많이 사용돼 왔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을 갖고 있다.
홍콩 정부도 이 같은 안전 문제를 들어 지난 3월 대나무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내화강철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나무 업계의 반발이 심해 시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당국은 "초기 추정으로는 불이 붙은 잡동사니와 대나무 비계가 바람 영향으로 인근 건물로 날아갔고, 화염이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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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재로 현지시간 오전 8시15분 기준 소방관(1명)을 포함해 4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약 279명이 실종 상태이고 구조된 인원 중 45명이 중태에 빠져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서지영 기자 zo2zo2zo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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