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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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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탈리아 '알레그리니(Allegrini)'

伊베네토, 발폴리첼라 지역 와이너리
고지대 포도밭과 전통 건조 기법
아마로네, 힘과 절제 공존하는 클래식

편집자주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아파시멘토(Appassimento)' 기법을 통해 건조한 알레그리니의 포도.[사진=알레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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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리니(Allegrini)'는 땅이 남기고 간 오래된 문장을 읽어낸다. 이들의 와인은 이탈리아 북동부 최고급 와인 산지 '발폴리첼라(Valpolicella)'의 기후와 토양을 그대로 드러낸다. 유난히 선명한 붉은 과실의 음영, 석회암의 단단한 결, 고지대 바람이 만든 깔끔한 산도까지. 그 모든 감각이 알레그리니의 문장으로 완성된다.


조반니 알레그리니, 발폴리첼라의 언어를 다시 쓰다

알레그리니 가문의 첫 기록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은 농업과 공예, 상업 문화가 겹겹이 뒤엉킨 곳이었고, 알레그리니 가문은 그 지역적 생태계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하며 뿌리를 내렸다. 지금처럼 명확한 와이너리 개념이 있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포도밭과 농경지의 관리 방식, 지역 공동체와의 연결 구조를 고려하면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의 지역을 꾸준히 관찰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알레그리니(Allegrini)'의 포도밭 전경.[사진=알레그리니]

현대적인 와이너리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한 19세기 중반부터 알레그리니는 단순한 농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역의 지질, 경사, 바람, 햇빛의 경로를 분석하며 포도 재배지를 세분화하고, 개성 있는 포도밭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조반니 알레그리니(Giovanni Allegrini)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전통적 방법론은 정교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조반니는 발폴리첼라 클라시코(Valpolicella Classico)를 다시 읽어낸 인물이다. 그는 오랫동안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돼온 방식 중 일부를 과감히 걷어냈다. 대신 관찰과 실험을 경작의 핵심으로 삼았다. 포도밭의 고도, 바람의 흐름, 토양의 입자 농도, 계절별 강수량을 다시 기록하면서 발폴리첼라의 가능성을 꼼꼼하게 재정비했다.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알레그리니의 최상급 싱글 빈야드 '라 포야(La Poja)'의 코르비나[사진=알레그리니]

그는 무엇보다 '아파시멘토(Appassimento)'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포도를 장기간 건조시키는 방식은 지역의 오랜 전통이었지만 조반니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산화, 무거운 잔당감, 텁텁한 질감을 일일이 분석했다. 그가 만들어낸 방향성은 명확했는데, 바로 "농축은 하되 산도와 선명함은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알레그리니의 모든 와인에 스며들어 있다. '아마로네(Amarone)'의 압도적인 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균형감, '팔라쪼 델라 토레(Palazzo Della Torre)'의 이중 구조 속에서도 살아 있는 신선도, 그리고 기본 '발폴리첼라' 와인조차 가벼움과 단단함을 동시에 갖는 이유는 조반니가 남긴 철학 때문이다.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토양의 미세한 차이가 와인의 품격을 만든다

발폴리첼라가 베네토주(州)에서 가장 유명한 레드 와인 산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발폴리첼라는 서쪽의 가르다 호수(Lake Garda) 주변은 지중해성 기후에 가까울 정도로 따뜻하지만 북쪽 레씨니 산맥(Lessini Mountains) 기슭은 알프스산맥에서 남쪽으로 찬 바람이 불어와 서늘한 기후를 띠고 있다. 특히 알레그리니가 있는 동쪽의 발폴리첼라 클라시코 마을들은 따뜻한 기후와 서늘한 기후가 공존해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발폴리첼라 와인 생산 지역[출처=발폴리첼라 와인 보호 협회(Consorzio per la Tutela dei Vini Valpolicella)]

발폴리첼라 클라시코는 푸마네(Fumane), 산 피에트로 인 카리아노(San Pietro in Cariano), 네그라르(Negrar)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 지역의 토양은 석회암과 점토 그리고 마른 자갈층이 층층이 겹쳐 있다. 석회암은 선명한 산도와 미네랄, 직선적 구조 형성을 담당하고, 점토는 입체적인 질감과 무게의 중심을 잡아준다. 자갈은 빠른 배수와 깊은 뿌리 성장을 돕는다.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아드리아해의 따뜻한 공기가 맞부딪힐 때 만들어지는 일교차는 이 지역 대표 적포도 품종인 코르비나(Corvina)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조금은 차갑고, 조금은 선명하며, 언제나 지나치지 않는 산도. 알레그리니의 레드 와인이 보여주는 '절제된 추진력'도 바로 이 기후에서 기원한다.

"많이가 아니라, 제대로"…생산량 축소와 고지대 집중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알레그리니 발폴리첼라 클라시코(Allegrini Valpolicella Classico DOC)'

최근 알레그리니가 내린 중요한 결정은 생산량 축소다. 일부 하위 라인을 정리하고, 발폴리첼라 클라시코의 고지대 포도밭에 집중하는 과정은 단순히 품질 향상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작은 언덕의 개성을 극대화해 '알레그리니 고유의 언어'를 더 명확하게 하려는 선택이다. 이들에게 양조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들의 땅이 어떤 결을 가지고 있고, 그 결을 어떤 문장으로 옮길 것인지 해석하는 문제다. 생산량 축소는 그 문장을 더 정확하게 만들기 위한 편집에 가깝다.


알레그리니의 대표 와인은 지역을 대표하는 '발폴리첼라 클라시코(Allegrini Valpolicella Classico DOC)'다. 발폴리첼라는 라이트한 기본 와인으로 라벨에도 간단히 발폴리첼라라고 표기하고, 발폴리첼라 명칭이 허용된 광범위한 지역 어디서나 생산할 수 있다. 발폴리첼라 클라시코는 이보다 더 작은 규모의 구역에서 생산되며 더 좋은 품질을 보여준다. 알레그리니의 발폴리첼라 클라시코는 단순히 가벼운 레드 와인이 아니다. 체리·석류·크랜베리의 산뜻한 과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지만 산미의 골격이 분명해 허술한 구석이 없다. 알레그리니의 와인 중 가장 일상적이면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알레그리니 팔라쪼 델라 토레(Allegrini Palazzo Della Torre IGT)'

'팔라쪼 델라 토레(Allegrini Palazzo Della Torre IGT)'는 알레그리니의 혁신을 대표하는 와인이다. 신선한 발폴리첼라 베이스에 건조 포도로 만든 와인을 다시 섞어 재발효하는 이중 발효(Double Fermentation) 방식을 적용했고, 이를 통해 신선함과 농축미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와인으로 거듭났다. 와인은 초콜릿과 감초, 스파이스, 바이올렛 그리고 부드러운 타닌이 이어지는 구조적 레이어가 특징이며, 따뜻한 풍미로 소고기·닭고기·파스타 등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아마로네, 아파시멘토가 만든 베네토의 정수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클라시코(Allegrini 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DOCG)'는 알레그리니의 절정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아마로네는 포도를 건조해 만든 드라이 레드 와인으로, 발폴리첼라 레드 와인 중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엄청난 쓴맛'이라는 의미를 지닌 아마로네는 코르비나를 중심으로 코르비노네(Corvinone)와 론디넬라(Rondinella), 오슬레타(Oseleta) 등의 지역 토착 품종을 혼합해 만든다.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아파시멘토(Appassimento)' 기법을 통해 건조한 알레그리니의 포도.[사진=알레그리니]

역사적으로 베네토처럼 서늘한 지역은 따뜻한 지역과 비교해 포도가 잘 익지 않아 상대적으로 가벼운 레드 와인과 바삭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알레그리니를 필두로 한 발폴리첼라 지역 생산자들은 기후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밀하고 강렬한 풀바디 아마로네 와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했는데, 이는 바로 '아파시멘토'라고 불리는 특수한 기법 덕분이다.


아마로네의 원료가 되는 포도는 발폴리첼라에 사용하는 포도보다 나무에서 더 익힌 이후 수확한다. 포도가 많은 양의 당분을 축적할 수 있도록 곰팡이와 부패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최대한 익히는 것이다. 이후 수확한 포도는 '프루타이오(Fruttaio)'라고 불리는 서늘한 건조실에서 3~4개월가량 건조하는데 이 과정을 아파시멘토라고 부른다. 건조 기간 동안 포도는 쪼그라들면서 당분과 풍미를 응축시키고, 수분은 3분의 1 이상 증발해 건포도처럼 변한다.


[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아마로네 와인 숙성에 사용되는 슬로베니아 대형 오크통 보티(Botti).[사진=알레그리니]

이렇게 아파시멘토 과정을 끝낸 포도를 으깨서 발효시키면 풍성한 풀바디의 아마로네 와인이 완성된다. 아마로네의 알코올 도수는 일반적으로 15~16도(%)로 평균 12도 수준인 발폴리첼라보다 훨씬 높다. 아마로네는 2년 이상 숙성시킨 후 출시되는데, 전통적으로 대형 슬로베니아 오크통인 보티(Botti)에서 숙성시킨다.


하지만 최근에는 더 많은 오크 풍미를 위해 프랑스 오크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손이 많이 가는 아파시멘토 작업은 와인의 가격을 높이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뛰어난 응축력과 검은 감초, 무화과, 흙 풍미 등을 자랑하는 아마로네의 수요를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


알레그리니의 아마로네는 어릴 때 막강한 타닌과 알코올, 풍성함으로 무장한 엄청난 육중함을 발휘한다. 고급스러운 쓴맛과 균형을 이루는 검은 무화과, 건포도, 바닐라, 감초 등의 풍미는 10년 이상 숙성시킨 후에 비로소 진정한 맛과 복합미를 드러낸다. 깊이 있는 풍미와 숙성 잠재력이 탁월한 고급 와인으로 힘과 절제가 공존하는 클래식한 아마로네의 모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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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경와인셀라]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 '한 잔'에 담았다…伊레드의 전설 '알레그리니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클라시코(Allegrini 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DOCG)'

알레그리니는 땅이 남긴 오래된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을 와인이라는 형태로 다시 적어 내려간다. 세대가 바뀌어도 그 해석법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언덕의 결을 먼저 보고, 땅의 리듬을 먼저 느끼며, 그다음에 비로소 와인을 만든다. 발폴리첼라 클라시코의 바람과 돌, 수 세기 동안 쌓여온 가문의 기억, 그 모든 요소가 한 병 속에서 다시 문장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을 천천히 오래 음미하며 읽게 된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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