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동물원' SF 거장 켄 리우 방한
프로그래머, 변호사 대신 작가 선택
"금전 보상 적어도 일의 가치 커"
경험 토대로 글 쓰지 않아
과학 콘퍼런스 등 통해 자극 얻어
뜸 들이는 시간 거쳐 집필 임해
"기술로 인간 이해...SF 장르 인기 이유"
"AI를 통한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에 기대"
작품집 '종이동물원'(황금가지)의 주인공인 잭의 어머니는 미국인 아버지가 결혼 정보 카탈로그를 보고 '선택'한 여성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홍콩 출신이라고 했지만, 그건 모두 거짓이었다. 그녀에게 결혼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 소설은 동양인의 눈을 가지고 태어난 잭이 백인 아이들과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어머니의 모든 것을 외면하지만, 그녀의 죽음 이후 그녀가 만든 종이호랑이에 적힌 편지를 발견하면서 뒤늦게 다시 어머니와 '연결'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2년 휴고상, 2012년 네뷸러상, 2012년 세계환상문학상을 받은 작품.
15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켄 리우는 '종이동물원' 속 잭의 엄마에 대해 "부유한 나라의 남성과 결혼하려 하는 제3세계 여성들이 부정적으로 비치기 마련이지만, 저는 그들이 더 나은 삶, 자신의 목소리와 사랑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용감한 여인들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정적으로 비치는 상황 속 여성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는 저자는 "본래 어느 출판사의 요청을 받고 쓴 글인데, 너무 생소한 관점인 나머지 출판사가 거부한 작품"이라며 "공동체의 일부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그분들(이민 결혼 여성들)에게 찬사를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켄 리우는 1976년 중국 서북부 간쑤성의 란저우시에서 태어나, 11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 세대다. 하버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삶은 다양하게 흘렀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7년간 일했다. 그리고 다시 작가로 돌아왔다. 그는 "작가의 삶이 프로그래머나 변호사만큼 금전적 보상이 많진 않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 독자를 만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라며 "제 작품을 통해 '생의 빛을 찾았다' '독서하는 즐거움을 찾았다'는 말을 들으면 무척 행복하다. 비록 돈은 덜 벌지만 굉장히 행복하고, 이 일의 가치를 느낀다"고 밝혔다.
그간 여러 SF소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그가 생각하는 SF는 미래 예측이라기보단 신화창조에 가깝다. SF고전인 '프랑켄슈타인'이 미래 예측이 아니라 후대에 생각할 바를 전했던 것처럼. 그에게 SF 미래 기술은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긍정적 수단이다. 그는 "흔히 기술이 인간을 위협하는 악으로 표현되는데, 전 오히려 기술이 인간을 온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며 "개미집 없이 개미를, 벌집 없이 벌을 이해하기 어렵듯, 기술 없이는 인간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점은 SF가 널리 읽히는 이유"라고 피력했다.
몇몇 작품에 그의 중국계 미국인의 배경이 작용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제 개인적인 삶을 바탕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며 "많은 자극을 받기 위해 과학 콘퍼런스에 참여해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여러 과학자와 '젊게 영생하는 법' '인간의 기억을 데이터화하는 법' 등의 대화를 나누며 영감을 얻은 후 꼭 뜸을 들이는 시간을 가진다는 그는 "독서와 산책을 하거나 아이와 놀거나,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가만히 있는 기간이 있어야 비로소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이야기는 곧 역사와 다름없다. 불어에선 역사와 이야기가 같은 뜻이며, 영어권으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최근에야 역사와 이야기가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 이유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로서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국가마다 우리는 누구이고 왜 지금의 모습으로 사는지, 다른 나라와 무엇이 다른 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가 제게 깊은 감동을 준다"며 "그런 면에서 한국의 역사에 존경심을 가진다. 굉장히 단시간 내에 현대적 국가를 이룬 현대성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한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 매듭묶기'와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활약상을 담은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 북두'를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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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인간의 창작물을 도용한다는 지적에는 "예술가들은 마땅히 보상받을 권리가 있고 윤리적으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재 자신의 생각은 그런 고민을 넘어선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장기적 관점에서 인간이 AI 없이 할 수 없었으나, 새롭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에 관심이 있다. AI로 인한 인간의 대체보다는, AI를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꿈을 이루는 데 흥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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