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교수 30인 성명 "불가항력 의료사고는 국가가 책임져야"
英·美에서도 고의나 중과실 아닌 의료행위는 형사처벌 대상 아냐
출생 직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아기의 분만을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 2명이 불구속기소 된 사건과 관련해 의료계가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의 책임을 의료인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서울대병원 등 전국 20개 대학병원 소속 젊은 산과 교수 30명은 15일 성명을 통해 "분만을 업으로 삼고 고위험 산모, 태아를 돌보는 일상 업무 속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가 형사 기소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깊은 충격과 절망을 느낀다"며 "산과 의사는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주장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산부인과 전문의인 A교수와 당시 3년 차 전공의였던 B씨는 2018년 12월 분만 과정에서 저산소증으로 인한 신생아의 뇌성마비를 초래한 혐의로 형사 고소를 당했다. 태아는 임신 중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었으나 자연분만으로 출생한 직후 전신 청색증 등을 보여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이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무혐의 결론이 났으나 검찰의 기소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같은 병원 다른 진료과 의사였던 산모는 이들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해 지난 5월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의료진이 태아에 관한 감시·관찰을 해태하거나 그에 대한 평가를 잘못해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원고 측에 6억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젊은 산과 교수들은 "출산 중 모성 사망이 국내에서 출생아 1만명당 1명, 자궁 내 태아 사망은 200명 중 1명 빈도로 일어나고, 신생아 뇌성마비도 1000명당 2명으로 알려져 있다"며 "그 원인도 자궁 내 환경, 태반 기능, 조산 여부 등 복합적이고 분만 과정 자체가 원인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분만 사고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하고 형사 기소 대상으로 삼지 말 것 ▲산모 피해에 대해 국가 차원의 안전망과 충분한 보장제도를 마련할 것 ▲의료진이 산과를 떠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적 대책을 세울 것 등을 요구했다. 이어 "지금 이 순간도 산모와 아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가는 우리 젊은 산과 교수들은, 이번 형사 기소 사건으로 인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산과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앞서 대한의사협회도 입장문을 내고 "의료진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상황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라며 "이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의료 현장에 큰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모체태아의학회는 "이미 분만 인프라 붕괴가 심각한 국내 모자 보건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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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는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의료 행위는 아예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고, 독일과 스위스 등에서도 과실범 처벌 규정이 있지만 의료 행위는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역시 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의학회는 그러면서 "뇌성마비와 같이 그 원인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나쁜 결과를 의료진의 잘못으로 단정하고 고의성을 가진 범죄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려운 의료 환경 속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에게 분만장을 떠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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