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압박에 글로벌 무역시장이 휘청이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를 향한 관세조치에 이어 '트럼프 라운드'라는 이름의 무역질서 재편을 공식화했다. '이제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트럼프식 무역압박 시즌1이 '관세'였다면 시즌2는 '트럼프 라운드'로 대표되는 새로운 무역질서 구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미국 중심의 새로운 무역 체제에 수립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3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WTO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 2016년께부터인데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WTO가 문제가 있으니 개혁하자'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트럼프 라운드 언급은 WTO에 대한 미국의 중대한 기조 변화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리어 대표가 한 언론사에 기고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USTR 홈페이지도 게시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 기관 홈페이지에 기고문을 올린 것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의미"라며 "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주의 체제에 대해 쌓여 온 미국 정부, 미국 사회의 불만이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어 대표의 이번 '트럼프 라운드' 선언이 최근 관세조치로 확인한 미국의 자신감 표현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하늘 국제법질서연구소 대표는 "미국은 주요국을 상대로 타결한 상호관세 협상이 '예상보다 더 잘 됐다', 즉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여전히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다"며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트럼프 라운드는 미국이 새로운 무역질서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트럼프 라운드 선언을 '미국이 무역을 산업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트럼프 라운드라고 하는 것은 '관세를 이용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양자 협상을 강화하자'라는 의미로 쓴 것 같다"며 "미국은 관세를 상당히 중요한 산업 정책, 즉 무역 정책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산업 정책의 수단으로서도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우루과이 라운드처럼 '라운드'라는 명칭을 붙이려면 참여국들이 합의를 통해 어떤 공통의 규칙을 만들고, 이 규칙을 공통으로 적용하는 것인데 트럼프 라운드는 힘의 불균형, 즉 비대칭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라운드 형태로 발전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트럼프 라운드 선언에도 WTO는 유지될 것으로 봤다. 미국도 당장은 WTO를 탈퇴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 대표는 "미국이 WTO를 탈퇴하면 WTO 회원국들과의 교역에서 협상관세가 아닌 일반관세가 적용돼 모든 국가와 제로에서 다시 관세 협상을 해야 한다"며 "아무리 미국이라도 이는 쉽지 않기 때문에 미국도 WTO를 바탕에 깔되 이번 관세 협상처럼 주요국과 주요 품목에 대한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미국의 WTO 체제 불신에 자유무역주의가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WTO가 유명무실하게 됐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라며 "우리나라만 봐도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고 WTO를 통해 교역하고 있고, 이처럼 WTO 체제의 교역량은 상당하기 때문에 미국이 WTO를 탈퇴한다고 해도 WTO의 체제가 타격은 받겠지만 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체제가 사라진다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고 지적했다.
다만 WTO 권한 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정 대표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통제했다가 2014년 WTO에서 패소하자 통제를 풀었는데, 당시만 해도 미국이 WTO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의 억지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회원국들이 WTO의 판단을 온전히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무역 기조를 기존 무역질서가 아닌 힘의 논리를 각국에 강요하면서 EU와 일본, 한국 등은 각각의 관세협상을 진행하는 등 각국은 각자도생의 상황에 부닥쳤다.
미국의 이 같은 방식에 반발하며 연대의 움직임을 보이는 국가들도 있다. 중국과 브릭스(BRICS) 등 미국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은 미국의 방식에 반발하며 연대할 움직임 보이고 있다. 실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기 위한 '단결'을 촉구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글로벌 사우스 각 국가가 단결해 선명한 기치로 일방주의·보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며 "국제적 공평·정의와 국제 관계의 기본 준칙, 개발도상국의 정당한 권익을 지키고 더 공정한 세계와 더 지속가능한 세상을 함께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는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세계 각국과의 FTA 확대에 나서고 있고, 영국은 지난해 12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했다.
이 교수는 "CPTPP나 브릭스 등 이미 존재하는 여러 그룹 안에서 좀 더 협력을 강화하는 수준에서 연대의 움직임을 먼저 시작하고 있다"며 "다만 미국에 대한 불만은 크지만 각국의 이해관계와 상황이 달라 연대의 구체화한 움직임까진 없지만, 가시화할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기존 WTO 체제 개혁 논의와 함께 트럼프 라운드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의 신무역체제에 대한 대응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무역실장은 "WTO가 단순히 분쟁 해결만 하는 곳이 아니고 자유화 협상도 해야 하고, 새로운 규범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못 한 게 사실이기 때문에 개혁의 필요성 자체는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WTO 체제가 존속되기 위해선 최근 통상환경 변화에 부응하도록 의미 있는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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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신무역체제 논의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이 지금 염두에 두고 있는 새로운 체제는 경제 안보와 반도체, 조선 등 여러 분야를 새롭게 규율할 규범이고, 이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며 "미국 중심의 신규범 형성, 새로운 틀을 짜는 작업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다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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