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2>세계무역 98% 담당…무역분쟁 해결하고 경제성장 이끌어
<3>미국, '핵심 설계자'에서 '질서 위협자'로
<4>WTO 흔든 시발점 중국…EU도 공범
<5>'플랜B' 마련한 EU…구조적 한계 여전
<6>각자도생? 합종연횡? 미국 뺀 세계화?…한국이 갈 길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상당수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은 지난 6년여간 상소기구 기능 정지에도 불구하고, 1심인 분쟁패널뿐만 아니라 상소기구(최종심) 대신 도입된 임시 상소중재제도인 '다자간 임시상소중재약정(Multi-Party Interim Appeal Arbitration Arrangement·MPIA)'을 활용하고 있다.
임시 상소기구인 MPIA는 기존 WTO 분쟁해결시스템(DSB)의 기능 정지를 보완하려는 '플랜B' 성격의 장치다. 그러나 미국, 인도 등 주요 통상국이 불참하면서 MPIA의 실효성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U는 2020년 4월 캐나다 등과 함께 WTO 내 다자간 중재협정 형태로 MPIA를 공식 발족했다. WTO에 따르면, MPIA는 기존 분쟁해결이 1심 판결 이후 상소가 제기되면 확정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됐다. MPIA는 WTO 협정 25조(중재조항)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참여국 간 합의에 따라 상소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
MPIA에는 현재 EU 회원국을 포함해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뉴질랜드, 멕시코, 브라질 등 52개국(EU를 1개 국가로 계산하면 2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여기 참여하지 않고 있다. WTO 사무국 자료(2024년 3월 기준)에 따르면, MPIA 가입국의 세계 무역 점유율은 약 30% 수준이다. MPIA는 정식 WTO 체제의 보완적 수단으로, 상소기구 복원 전까지 한시적으로 유지될 예정이다.
MPIA의 절차는 WTO 상소기구 운영 방식을 상당 부분 차용하고 있다. WTO 규범 및 판례를 기반으로 3인 중재 패널이 사건을 심리하고, 이들의 판정은 구속력을 가진다. 다만 MPIA는 참여국 간 분쟁에만 적용되며, 비가입국과의 분쟁에는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출범 이후 MPIA는 실제로 일부 분쟁에서 기능을 수행했으며, 2022년 12월21일 첫 MPIA 가입국 간의 중재합의가 체결됐다. 이는 EU와 콜롬비아 간 냉동 감자튀김 분쟁의 최종 판결로 상소 제기 90일 이내에 39쪽의 짧은 보고서로 판정을 갈음하며 기존의 문제점을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상소기구가 정상 작동했다면 수행했어야 할 역할을 MPIA가 대체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밖에 MPIA 비참여국이었던 튀르키예가 MPIA 참여국인 EU의 제소에 따라 WTO의 분쟁해결절차(DSU) 제25에 따른 MPIA 원칙을 존중하는 중재합의를 체결했으며 튀르키예는 중재 판정을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DSB에 통보했다.
그러나 MPIA의 구조적 한계도 명확하다. 우선 미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무역대국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 5월 관련 보고서를 통해 "세계 무역 분쟁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MPIA 바깥에서 해결 불능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WTO 통계를 봐도 2024년 기준 전체 WTO 분쟁 사건 중 약 65%는 MPIA 가입국 간 분쟁이 아니며, 따라서 MPIA로 해결할 수 없다.
특히 미국은 MPIA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3년 연례보고서에서 "MPIA는 WTO 구조 문제를 회피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진정한 해결책은 상소기구의 근본적 개혁"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WTO 규범을 위반하는 판결을 상소기구가 반복했다는 이유로 단순 복원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MPIA가 아무리 활동하더라도 미국과의 분쟁에서는 여전히 최종 판결을 내릴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MPIA의 구조적 한계를 더욱 부각시킨다. MPIA는 분명 상소기구 공백을 메우기 위한 유용한 임시 수단이지만, 근본적 대안은 아니다. 미국, 인도, 브라질 등 핵심 통상국이 빠진 상태에서는 글로벌 무역 규범의 구속력을 복원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상소기구 복원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단순 인원 충원이나 절차 개정으로는 상소기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WTO 재판관의 권한 남용 방지, 판결 기한 엄수(90일 규정 준수), 초국가적 판례구축 관행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EU를 비롯한 다수 회원국은 이런 미국의 요구가 과도하다고 보고 있어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WTO 기능 부재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경고하고 있다. IMF는 2024년 세계경제전망(WEO)에서 "무역 규범 불확실성 심화는 투자 둔화와 공급망 왜곡을 초래해 세계 성장률을 0.4%포인트 이상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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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MPIA는 참여국 간 분쟁 해결을 통해 일정 부분 WTO 기능을 보완하는 데 성공했지만, 글로벌 차원의 무역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WTO 체제의 신뢰와 구속력을 완전히 복원하기 위해서는 미국 등 주요국의 정치적 결단과 함께 구조적 개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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