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트먼·손정의, 삼성 서초사옥 방문
이재용 회장과 2시간 가까이 회동
'스타게이트' 협력 방안 제의·논의했을 듯
반도체 지원 등 협력 검토 가능성
中 딥시크 견제 차원 의미도
삼성전자와 오픈AI, 소프트뱅크그룹. 한미일을 대표하는 기업의 수장들이 우리나라 서울시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모여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의 AI스타트업 '딥시크'의 급부상으로 AI 시장에서 이에 대한 견제와 대응이 절실해진 한미일의 국가적 상황과 맞물려 세 기업의 의기투합이 앞장서서 활로를 열어갈지 관심이 쏠린다.

4일 오후 2시40분께 서울 강남구 서초사옥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약 두 시간에 가깝게 '3자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르네 하스 CEO, 전영현 삼성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도 동석했다.
이 회장과 올트먼 CEO의 회동은 당초 예정돼 있었지만, 손 회장의 합류는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손 회장은 당초 다른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들렀으나 평소 친분이 두텁고 AI 시장에서 긴밀히 협력해 온 올트먼 CEO, 이 회장이 만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른 일을 제쳐두고 합류했다.
세 사람의 회동은 미국에 세우는 AI합작사 '스타게이트'와 관련해 잠재적인 협력을 제안하고 논의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을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은 삼성 서초사옥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과 만나 "스타게이트의 진전 상황과 삼성과의 잠재적 협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삼성에 스타게이트에 대한 투자를 요청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 소프트뱅크가 지난달 21일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과 손잡고 만들겠다고 발표한 AI 합작사다. 양사는 향후 이 회사에 4년간 5000억달러(약 729조원)를 투자하기로 하고 미국에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로젝트명도 '스타게이트'다.
올트먼 CEO와 손 회장은 이 회장에게 삼성이 이 스타게이트에 필요한 각종 반도체를 공급하는 등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의했을 것으로 점쳐진다.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선 여기에 탑재해야 하는 AI칩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이외에도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AI PC용 메모리인 GDDR7 등도 필요로 한다.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가전제품을 활용한 '냉난방 공조 솔루션'도 있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서 한꺼번에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우리나라 기업은 사실상 삼성이 유일하다. 올트먼 CEO와 손 회장은 이 회장과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 관계는 물론이고 이렇듯 삼성이 가진 다방면의 산업 경쟁력을 주목했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오픈AI와 오라클이 만드는 소프트웨어에 삼성의 반도체 등 하드웨어, 소프트뱅크의 막대한 금전 지원과 투자력이 모이면서 '어벤져스'급 동맹이 결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의기투합은 올트먼 CEO가 발 벗고 나서면서 성사된 면이 커 보이는데, 그 배경에는 역시나 최근 적은 비용으로 AI 플랫폼 'R1'을 내놓으며 오픈AI의 챗GPT의 위상을 위협한 중국의 딥시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딥시크는 상대적으로 저가, 저성능의 AI 칩 등을 가지고도 챗GPT와 버금가는 성능의 R1을 세상에 내놔 AI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후 점차 AI 시장에서 수요를 늘려가며 성능은 최고지만 가격이 비싸 기업들에 부담이 됐던 챗GPT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트먼 CEO는 한미일 기업들의 동맹을 과시하고 보다 새롭고 규모가 큰 도전에 나설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회동의 장소를 우리나라로 낙점한 것 역시 그 의미가 작아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챗GPT에 대한 활용도가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인데다 한미일 중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다. 중국의 목전에서 회동하는 모양새를 띄우며 경쟁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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