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 유통경로 놓인 국가들 공세
관세 일단 유예했지만…韓도 대비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한 후, 한달간 유예조치를 발표했다. 이어 해당 3국을 관세전쟁의 첫 표적 삼은 명분으로 중국을 거쳐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에 밀수되고 있는 마약, '펜타닐'을 언급했다. 그동안 펜타닐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인 중국 뿐만 아니라 펜타닐 유통경로상에 위치한 캐나다와 멕시코까지 관세전쟁의 포화를 맞게 되면서 전세계 경제는 교역위축 우려에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도 미국과 언제든지 관세전쟁에 돌입할 수 있게 되면서 각국의 대응준비도 발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전면 관세 시행을 하루 앞두고 한달간 전격적으로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4일부터 10% 추가관세 부과가 예정된 중국정부와도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교역위축 우려는 한고비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이미 2019년부터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던 중국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우방이자 이웃나라인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강도높은 관세부과를 발표한 것 자체로 국제사회에 주는 충격은 매우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3국에 관세전쟁 포화를 열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펜타닐 규제는 미국 안팎에서 주요 키워드로 다시 떠올랐다.
이 펜타닐은 1959년 벨기에의 저명한 의학자 홀 얀센이 개발한 수술용 마취제로, 모르핀보다 100배 강력한 진통 효과를 가진 혁신적인 약물이다. 개발 당시에는 대수술 분야의 혁신을 가져온 '기적의 진통제'로 평가받았으며, 개복 수술 등 고난도 수술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 약물이 마약 용도로 악용되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중국의 화학 공장들이 생산하는 펜타닐 원료가 중남미 마약 조직을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마약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조직이 자국 화학 공장으로부터 펜타닐 원료를 매입해 중남미 조직에 넘기고, 이를 완제품으로 가공해 미국으로 밀수출하는 체계적인 유통망이 구축되었다. 이는 넷플릭스 등 각종 미디어에서 다뤄질 만큼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범죄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미국의 펜타닐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2001년 약 2만명 수준이던 미국 내 약물 중독 사망자가 2021년에는 10만명을 넘어서며 20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 사망자의 대부분이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사회의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로 대두되었으며, 미국 정부가 중국 측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정부는 펜타닐 완제품의 생산과 유통에 대해 사형까지 처하는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러한 조치가 불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오히려 미국 내 소비자들에 대한 단속 강화가 필요하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닐 유입 경로에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까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초강경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는 국제 무역 관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대러시아 제재에서도 우회 경로에 있는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제재는 제한적이었다. 이는 우회 경로 상의 국가들에 대한 전면적인 제재가 글로벌 교역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글로벌 교역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은 모두 미국이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실질적으로는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압박책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멕시코는 미중 무역분쟁 이후 미국 기업들의 리쇼어링 전략에 따라 주요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제조사들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공장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멕시코 국경지대가 새로운 생산 허브로 떠올랐으며,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와 유리한 환율 효과 때문이었다.
캐나다의 경우는 더욱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대 셰일오일 기술이 개발된 이후, 캐나다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신해 미국의 최대 석유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현재 미국은 석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캐나다로부터 조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동 석유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더 낮은 가격의 석유 수입을 원하고 있으며,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캐나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을 비롯한 다른 무역 흑자국들도 향후 비슷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556억 달러로 8위를 기록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 한국에서도 중국과 북한발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고, 제3국으로의 마약 유통 경로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펜타닐 유통을 명분으로 한 무역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무역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펜타닐이라는 공중보건 이슈를 무역 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19세기 아편전쟁을 연상시키는 '신 아편전쟁'이라 불릴 만큼 무역 분쟁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글로벌 교역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조치가 관세 부과의 새로운 선례가 될 경우, 앞으로 미국은 자국에 해가 되는 물품의 유통 경로상에 있는 모든 국가들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들은 이러한 새로운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대응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마약 밀수와 같은 초국가적 범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국제 사회는 정당한 무역 제재와 과도한 보호무역주의를 구분하고, 글로벌 교역 질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규범 확립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박수민 PD soo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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