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론은 양적/질적 방법론으로 나뉜다. 전자가 통계화, 위계화, 서열화 경향을 지닌다면 후자는 숫자로 포착할 수 없는 의미 구성에 초점을 맞춘다. 책은 일본의 저명한 사회학자들의 독특한 질적 방법론을 통해 사회 현상의 '이유'를 밝혀낸다. 저자들은 '모든 사람의 모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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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절대 타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어떤 차별이나 폭력을 당하는 당사자나 우리가 평소에 잘 접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볍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무거운 문제에 대해 여기서 충분히 논의할 수 없는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이것만은 말해 두겠습니다. 타자를 가볍게 이해하려는 것은 폭력입니다. - p.69
우리는 당사자가 될 수도 없고, 그 힘듦을 안이하게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사정을 납득함으로써 그 사람들의 ‘이웃’이 될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잠자코 곁에 있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질적 조사에 입각하는 사회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타자의 합리성의 이해를 통해서 우리가 서로 이웃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 p.71
사회학적 질적 조사란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타자를 이해하려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막연한 흥미와 관심으로 필드에 들어가서 타자를 만나고 그 속에서 자신이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는 작업은 결국 타자를 이해하려는 행위이면서, 사실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행위이기도 하지 않았을까요? - p.160
필자는 참여관찰에 기반한 논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을 썼는가’와 동시에 ‘무엇을 쓰지 않았는가’라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대학원생 시절에 참석했던 세미나에서 배운 것이기도 합니다. 세미나에서는 각자의 진행 상황 보고가 주된 내용이었고, 다양한 주제의 보고를 그 자리에서 계속 들었습니다. 한센병, 장애인 운동, 가정 폭력, 공공사업에 의한 퇴거 지역 등 넓은 의미로 ‘사회문제’의 사회학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것은 조사 내용을 보란 듯이 모두 기술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 p.243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드립니다. 조사라는 것은 생활사에 국한되지 않고, 양적 조사든 질적 조사든, 어떤 조사든,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폭력입니다. ‘그들’은 ‘우리’로부터 조사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고민하고, 상처받고 있는 곳에 우리 조사자들은 성큼성큼 흙 묻은 발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연구 주제가 다수자(majority)와 소수자(minority)의 구조적 차별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만, 그렇지 않은, 언뜻 보기에 차별이나 인권 문제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주제라도 조사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그 자리의 ‘구조’로서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 p.268
타자 이해의 사회학 | 기시 마사히코 외 2명 | 호밀밭 | 384쪽 | 1만9800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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