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불신 자초한 헌재](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20410320118519_1738632732.jpg)
3일 낮 12시쯤. 기자의 휴대전화에 헌법재판소발 메시지가 떴다. '2025헌라1 변론 재개(2.10. 오후 2시)', '2024헌마1203 선고기일 연기(추후 지정)'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데 따른 권한쟁의와 헌법소원 사건 선고를 연기한다는 통지였다. 갑작스러운 선고 연기 소식에 헌재 브리핑룸이 술렁였다.
헌재 공보관에게 이유를 물었다. "제가 따로 전달받은 사항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 10일 변론 재개 때 알려주나"라고 재차 물었지만 그 역시 충분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3일 시작됐다. 최 대행의 임명 보류가 국회 선출권을 침해했다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권한쟁의를 청구한 것이 계기다. 이후 헌재의 행보는 다른 어느 사건보다 신속했다. 헌법재판에서 통상 거쳐 온 준비절차 없이 사건 접수 20일도 안 된 지난달 22일 첫 변론을 열었고, 그날로 변론을 종결했다. 그 뒤로 열흘 말미를 두고 정해진 선고 기일이 지난 3일이었고, 선고를 불과 두 시간 앞두고 '돌연' 연기한 것이다.
'마은혁 임명 여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이라는 중차대한 숙제를 풀어내고 있는 헌재가 '9인 완전체'로 심판에 임할 수 있느냐, 아니면 현재의 8인 체제로 가느냐를 가를 수 있는 문제다. 지금처럼 결원이 있는 상태와 9명의 재판관이 모두 참석한 결론은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헌재가 권한쟁의 사건 심리를 서두른 이유를 놓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각종 추측과 주장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이유 가운데 첫째는 바로 '완전체'의 모습을 갖춰 최선의 결론을 내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하고 양쪽 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헌재가 보여준 모습은 다소 거리가 있다. 선고 기일을 몇 시간 앞두고 연기하는 경우는 일반 재판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선고 직전 재판에 영향을 줄 만한 새로운 사실관계가 밝혀지거나,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못했을 때나 일어난다. 이번 사건에선 새로운 사실관계가 드러난 것은 없다. 벌써부터 헌재 주변에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자 이를 의식한 헌재가 속도 조절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에 '이제 마은혁 임명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헌재 스스로 불신을 자초(自招)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지난달 31일 헌재는 브리핑에서 "정치권과 언론의 (헌재 흔들기로 인한) 사법부 권한 침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고 했다. 헌재의 항변이 무색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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