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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르포]마닐라의 정치드라마, 마르코스·두테르테 가문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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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대통령·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하자마자 사사건건 격돌
지난달 부통령 탄핵안 제출에
전국 200만명 탄핵반대 집회

[아시아르포]마닐라의 정치드라마, 마르코스·두테르테 가문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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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트럼프 집권 2기 시대 대만과 함께 가장 높은 지정학적 중요도와 이점을 가진 나라로 손꼽힌다. 중국과 갈등이 첨예한 남중국해를 비롯해 더 넓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필리핀은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전략적 균형추 구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트럼프와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이하 봉봉) 대통령과의 ‘동맹’에 대한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 이 둘 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거래’를 중시하는 실용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봉봉의 친미(親美)적 태도가 어울려 미국·필리핀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통령 탄핵 정국=2022년 출범한 봉봉 행정부가 국내 정치 갈등 문제로 벌써 수렁에 빠진 분위기다. 벌써 1년 전부터 본격화된 부통령 사라 두테르테(이하 사라)와의 갈등 때문. 지난해 12월 부통령 탄핵안이 제출된 만큼 이 둘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다. 자연스레 국민도 동요하고 있다.

필리핀 의회가 재개된 지난 13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는 장관이 펼쳐졌다.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는 리잘 공원 키리노 그랜드스탠드에 100만 명 이상의 종교인들이 평화 집회를 연 것. 전국적으로는 8개 지역에서 약 200만 명이 참여한 초거대 집회였다. 이들은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탄핵 소추 반대 평화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로 연신 기도문을 외우며 정치인을 위해 눈물 흘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종교 행사라고 불릴 정도로 차분하게 진행된 이 날 참석자들은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갈등, 비난, 이기심이 아니라 화해“라고 대통령과 상원에 호소한 것이다.


이 집회는 필리핀의 영향력 있는 기독교 단체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INC)가 주최했는데 후폭풍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필리핀에서는 천주교와 기독교 등의 종교단체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종교 단체 소속 유권자들은 특유의 집단투표 성향을 보이며 강력한 이익단체 역할을 자임했다. 이번에 집회를 주도한 INC 세력은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하지만, 응집력 있는 투표 성향으로 선거에서 존재감이 컸다. 자연스레 오는 5월에 열리는 보궐 선거에서 여당의 위세는 추락할 수 있고, 동시에 사라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며 봉봉을 압박할 수 있다.


필리핀 정치 갈등은 낯설지 않은 소재다. 하지만 2022년 대통령과 부통령 콤비로 승리를 거둔 ‘봉봉’과 ‘사라’의 이른 분열과 적대 관계로의 돌변은 충격적이다. 우선 이 둘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은 편이다. 독재자 마르코스 집안은 필리핀 북부를 대표하는 집안이고, 두테르테 집안은 남부 민다나오 세력을 대표한다. 필리핀은 대표적인 권문세가 끼리끼리의 합종연횡 정치 문화를 갖고 있어 이 같은 연합은 ”나눠 먹기“라는 비난도 받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두 세력의 더 큰 정치적 야망이 긴장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사라가 잠재적 차기 대권 후보라는 게 관건이다. 2028년 대선 후보 야심을 가진 사라 두테르테는 자신의 야심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반면 봉봉 대통령은 가족의 유산을 통합하고 필리핀 정치 가문들의 세력 균형에 집중하고 있어 두 사람이 절충점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집권하자마자 대통령과 부통령은 정부의 고위 임명직과 정책 우선순위에서 사사건건 격돌해 왔다. 사라는 부통령 겸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했는데 자연스레 의전용 부통령을 넘어 봉봉 행정부 인사들과의 심각한 의견 대립 양상까지 보이게 된다. 사사건건 불협화음이 계속되자 봉봉과 집권당은 지난해 연말 부통령 탄핵 카드를 꺼내 들기에 이른 것이다. 탄핵 이유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대통령과 하원의장에 대한 살해 위협’ ‘부정한 재산’ ‘대규모 부패와 다른 중범죄 연루’ 혐의다.


두 집안의 철학과 외교 정책 차이도 영향을 끼쳤다. 마르코스 집안은 대대로 친미적 엘리트 세력과 가깝다. 아버지 마르코스가 하와이로 정치 망명을 갔으며 본인도 주로 미국에서 교육받았다. 반대로 두테르테 집안은 필리핀 토착 엘리트 세력과 더 친근한 편이다. 친중(親中)까지는 아니더라도 서구식 개혁 프로그램에 동참할 생각은 적어 보인다.


◆사라를 지원하는 이유?=지난 13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종교계의 ‘사라 탄핵 반대’ 움직임도, 이 같은 배경으로 해석하는 게 도움이 된다. 필리핀의 종교 기관들 역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법적 및 제도적 보호나 토지 분쟁, 세금 문제 등에서 교회의 특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집안이 전통적으로 토착화된 종교에 유리한 정책을 펼친 것도 한몫한 영향도 있다.

봉봉은 이미 지나간 권력이지만 사라의 권력은 미래 권력이기 때문에 미리 줄을 선다는 분석도 나온다. 필리핀 대통령은 연임이 불가능하고, 사라는 상원의 탄핵 결정을 피해 가기만 한다면 2028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전국적인 높은 지명도와 종교계의 지지를 끌어들인 사라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앞으로의 집회는 더욱더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필리핀은 대표적인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나라로 손꼽힌다. 일찌감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했지만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거대 가문의 ‘과두정치’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토지 자본 입장에선 제조업 중심 경제보다는 농업 경제가 유리하니 국가 정책 역시 헛바퀴만 돌 수밖에 없었다.

전임 두테르테 행정부 역시도 국가 예산의 대부분을 ‘인프라-스트럭처’ 혁신에 쏟았지만, 제조 산업으로 정책 연계를 보이지 못하며 뚜렷한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봉봉 대통령과 사라 부통령 역시 겉으로는 “경제 개혁”을 외치고 당선되었지만, 여전히 농업 부문을 발전의 핵심 부문으로 강조하는 한계를 보인다. 양 집안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는 있지만, 내용상의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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