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
"기재부·한은 등 협의 거쳐야"
금융위, 1분기 중 의견 수렴해 상반기 정부입법 목표
금융위원회가 올해 정부입법을 추진하는 '신속정리제도'에 관해,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절차를 금융위 단독으로 결정하기보다 기획재정부·한국은행과의 협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같은 금융위기에 대비해 한국도 부실금융회사에 대한 신속정리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다.
이영경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은행 신속정리제도 도입을 위한 법적 과제' 보고서에서 "신속정리절차 개시여부에 관한 판단이 독단적이거나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여러 기관이 관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신속정리제도는 일반 은행 정리 절차의 여러 단계를 생략하거나 기간을 단축하는 만큼 이해관계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며 "시스템 위기나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 상황이라는 판단을 한 기관에서만 하기보다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여러 기관이 관여해 자의적 판단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신속정리제도 도입 시 금융위의 단독 결정이 아닌 기재부·한은의 협의를 의무화하고 대통령과 국회에도 보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속정리제도는 부실이 발생한 금융사를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동의 없이도 신속하게 매각하거나 자산을 이전할 수 있는 제도다. SVB 사태 당시 미국과 영국은 이 제도를 통해 위기를 빠르게 수습할 수 있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를 폐쇄하고 이틀 만에 가교은행을 설립해 예금과 자산을 이전했으며, 영국도 SVB 영국 자회사를 HSBC에 신속하게 매각했다.
영국은 특별정리제도상 조치에 관한 결정에서 금융감독청, 중앙은행, 재무부가 공동으로 은행 정리 조치를 결정한다. 미국도 재무부 장관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권고와 대통령 협의를 거쳐 시스템 위기 여부를 판단한다.
보고서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도 디지털화로 인해 SVB와 유사한 위기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도입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인터넷뱅킹과 모바일 앱 등을 이용한 디지털 금융환경이 일상화되어 디지털 뱅크런에 취약해졌다"며 "금융거래가 한층 복잡화되어 은행의 부실화가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속정리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관련 정부입법은 올해 금융위의 업무계획에 포함돼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당시 미국과 영국 당국이 3일 만에 정리를 마친 것처럼, 우리도 위기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1분기에 공청회와 세미나 등을 통해 의견을 모아 상반기 중 입법을 완료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마련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른 금융사 정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0년에는 국제기구의 권고를 반영해 일부 제도를 개선했지만,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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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현행 제도하에서는 부실금융기관 결정, 경영개선명령 부과, 이행여부 점검 등 각종 절차에 통상 3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SVB 사태에서 미국과 영국이 수일 내에 정리절차를 마무리한 것과 대조적이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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