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기자수첩]경호처장의 한마디

시계아이콘01분 13초 소요
뉴스듣기 글자크기
[기자수첩]경호처장의 한마디
AD

지난 10일 오전. 경찰청 기자실로 급한 알림이 떴다.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경찰 조사에 불응해오던 박종준 경호처장이 조사받으러 온다는 소식이었다. 영하 10도 가까운 맹추위 속에 박 처장이 포토라인에 섰다. "현직 대통령 신분에 맞는 수사 절차" "현재와 같은 체포영장 방식은 아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과 경호처가 보인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들이 이어졌다.


‘대체 언제까지…’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치는데 갑자기 박 처장의 한마디가 귀를 잡았다. "경찰 조사엔 처음부터 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경찰 출신인 제가 경찰 소환을 거부하고 수사받지 않으면 그 누가 경찰 수사를 받겠습니까" 경찰 치안정감 출신인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국가 공권력을 대하는 공직자의 자세를, 나아가 국민의 의무를 웅변하고 있었다. 뒤이어 그가 사표를 제출했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수리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최 대행이 만류했으나 박 전 처장 뜻은 완강했다는 후문이다. 이 또한 국가기관의 수사에 대해 마땅히 공인(公人)이 취해야 할 태도와 다르지 않다.


박 전 처장은 그 뒤 계속 경찰의 추가 조사를 받고 있고. 휴대폰 포렌식에도 협조하고 있다. 물론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와 관련해 윤 대통령을 엄호하기 위한 시간 끌기라는 말부터 고도의 속임수라는 말까지 의심 섞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과 관련한 사실관계도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박 전 처장에게 만약 그런 뜻이 있었다면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특히나 박 전 처장이 보여준 공직으로 평생을 일관한 사람의 공권력을 대하는 자세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제가 검사로 공직생활을 27년 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검사 때 수사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도 많이 했다. 검사로서 27년 공직생활을 거쳐 대통령에 올랐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직자인 대통령으로서, 또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권력과 수사를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겹겹이 차벽에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TV 화면 속 한남동 대통령 관저의 모습은 기괴하다 못해 처연하다. 기자와 비슷한 또래인 듯한 경호관들이 추위에 종종걸음치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아마 기자뿐 아니라 비슷한 세대 대다수의 생각일 것이다. 경찰과 공수처가 금명간 체포영장 집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대통령은 ‘박 전 처장의 한마디’를 떠올려 달라. 대한민국 최고 공직자로서 행동해 달라.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