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닛케이225, 35년 만 최고치
2014년부터 정부 주도로 거버넌스 개혁 추진한 결과
증시 상승 주역 개인투자자, 美 투자 이민 느는 추세
장기간 경기 침체로 '잃어버린 30년'으로 곧잘 묘사되던 일본이 달라졌다. 적어도 주식 시장에선 그렇다. 지난해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4만 선에 근접하며 35년 만에 역대 최고치로 장을 마무리했다. 이는 연말 종가 기준으로 거품(버블) 경제 시기였던 1989년(3만8915)을 웃도는 수준이다. 1990년대 자산 거품이 꺼진 뒤 기나긴 부진에 시달렸던 일본 주식시장이 다시 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코다이라 류시로 닛케이신문 선임기자는 7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주최한 '일본 거버넌스 개혁 추이와 2025년 전망, 한국에 주는 시사점' 세미나에서 일본 증시 부흥의 배경으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거버넌스(기업지배구조) 개혁을 꼽았다. 그는 미국의 S&P500, 일본의 닛케이225, 한국의 코스피 지수의 10년간 수익률을 비교하며 "최근 2년 동안 닛케이225 퍼포먼스가 미국과 겹치거나 미국을 뛰어넘기도 했다"며 "이런 차이는 기업의 수익성과 기업 거버넌스가 얼마나 탄탄한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5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주도 아래 기업거버넌스 개혁을 시작했다. 2014년 스튜어드십코드를, 2015년엔 기업거버넌스코드를 각각 도입했다. 도쿄증권거래소(TSE)는 상장기업들에 직접 '주가를 올리라'고 압박하는 등 2023년 주가순자산비율(PBR) 개혁을 주도했다. 일본 프라임 시장에 상장한 모든 기업을 편입하고 있는 토픽스(TOPIX) 지수를 유동주식 비율 등을 기준으로 2028년까지 1200개로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지수 개정 작업에도 착수했다.
그는 "지난 2년간 도쿄증권거래소가 강력한 리더십을 취했고, 그 결과 상장사들이 주주 친화적인 스탠스로 바뀌었다"며 "2023년 4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 시장에 더 많이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로 인해 일본 주식 시장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일본 기업 지배구조의 고질병인 상호출자 문제도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체 증시에서 50% 수준에 달하던 상호출자 비중은 최근 10% 수준까지 줄었다. 아식스가 대표적인 예다. 아식스는 지난해 7월 상호출자 지분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아식스의 주가는 150% 이상 급등했다.
일본 행동주의 캠페인 건수 일 년 새 세 배…한국은 급감
그는 일본 내 주주행동주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일본증시 상승의 숨은 공신으로 주주행동주의의 메기효과를 꼽는다. 주주행동주의 덕분에 기업 거버넌스와 출자 구조가 개선되고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렸다는 것이다. 코다이라 선임기자는 "일본에서 최근 행동주의 투자자가 많아졌다. 이들의 활동으로 기업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며 "이것이 일본 주식 시장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일본 내에서 주주행동주의의 영향력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66건의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 있었다. 이 중 일본에서 일어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 51건, 한국은 9건이었다. 특히 일본 내에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은 전년(2023년) 14건에서 지난해 51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기업 사냥꾼'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한국은 2023년 15건에서 지난해 9건으로 되레 줄었다.
코다이라 선임기자는 "흥미로운 점은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내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며 "이제는 많은 사람이 이들이 오히려 소액주주들을 대변하며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행동주의 투자자나 가치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며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너무 보수적이라는 점이다. 일본 기업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훨씬 더 개방적"이라고 부연했다. 일본 총리와 헤지펀드 대표와의 만남은 이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지난해 일본 시장을 이끈 주역은 개인투자자들이었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주주가치 제고 노력도 있었지만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가 개인투자자의 주식 시장 참여를 유도했다는 해석도 있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NISA 계좌에 45조엔이 유입되며 지난해 연간 유입 금액 30조7000엔을 뛰어넘었다. 또 신규 유입 자금의 47%가 주식에 투자됐다.
코다이라 선임기자는 "세금 절감 계좌인 NISA는 매우 인기가 높아 개인투자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고 너도나도 주식계좌를 개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이민 투자자 수가 느는 추세다. 그는 "이들이 NISA를 통해 미국 S&P500지수, 다우존스 등 지수에 투자한다"며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은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테슬라, 애플 등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집 떠난 개인투자자 자금을 국내로 돌리기 위해 일본 정부가 고심 중이란 얘기도 전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하루에 거의 10억달러가 미국 시장으로 빠져나갔다. 정치인들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미국 주식 대신 일본 주식으로 돌릴 해결책은 스스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고 일본 기업이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지금 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일본은 2023년 7월 'JPX Prime 150 지수'를 출시했다. 한국이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만들 때 참고했던 지수이기도 하다. 일본 금융당국의 기대와 달리 JPX Prime 150지수는 닛케이225 지수와 비교해 시장 수익률이 저조했다.
코다이라 선임기자는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투자자들이 기존의 닛케이225나 토픽스 같은 지수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는 삼성전자가 혁신 부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코다이라 선임기자는 "미국 시장에서는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가 상징적인 기업 역할을 하고, 일본에선 소니와 도요타가 그렇다. 반면 삼성전자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점점 더 지루하고 정체된 기업으로 보이고 있다"며 "삼성이 지난 10~15년간 사업 포트폴리오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러한 혁신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고 꼬집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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