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혼란에 민관 소통 소원
국제무대 기업간 경쟁 치열
자국정부, 우군 나서는건 당연
통상정책을 담당했던 한 전직 관리는 과거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의 교섭을 인상적으로 기억했다. 협상 도중 수시로 끊고 나가 자국 기업과 긴밀히 논의해 가면서 세부 전략을 가다듬는 모습을 낯설어했다. 마치 옆 방에 제너럴모터스(GM)나 카길의 직원이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협상이 쉽지 않다고 여겼던 건 상대가 강대국인 데다 민관이 합심했던 점도 영향을 끼쳤을 테다.
세부 실행 방식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당국자도 마음가짐은 비슷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랏밥을 먹는다면 공적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자국민이나 기업을 위해 일하는 게 순리이기 때문이다. 법은 하지 말라는 규율도 있지만 반대로 독려하거나 강제하는 내용도 있다. 산업을 진흥하거나 기업 경영을 돕는 게 대표적이다. 행정부 공무원은 법을 지키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정부의 수반도 한때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인상을 준 적이 있는데,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앞뒤 다른 태도를 보면서 그런 인상은 깡그리 사라졌다. 대다수 공무원은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상명하복을 근간으로 하는 조직인 만큼 공직에 있다는 것만으로 애먼 처지가 됐다. 합법적인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사회인 줄 알았는데 정치 지도자나 소수 참모의 잘못된 판단으로 언제든 망가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언제 평온한 적이 있었겠냐만 최근 기업이 처한 상황은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 경기회복 기대감, 스트롱맨의 귀환에 힘입어 미국 달러가 비싸진 건 모든 나라가 같이 겪는 일이다. 그 와중에 우리 통화 가치가 유독 더 떨어진 건 최근 불안해진 국내 정치 상황 탓이 크다.
통상 대내외 사업 비중에 따라 환율 등락은 기업 재무상태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한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진 건 기업 입장에선 최악이다. 헤징 수단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위기 대처 시나리오를 몇 배 더 준비해야 한다. 그 자체로 비용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전략을 짜고 달라질 미래 환경을 선제적으로 대비하자는 구호는 현 국면에선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판매량 기준 세계 8위인 일본 닛산도 기업 존폐가 불투명해지면서 경쟁사에 손을 내밀 정도다.
미·중 간 패권경쟁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하면서 보호무역 기조는 한층 완연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입만 열면 관세 얘기다. 실제 무역장벽을 높이기보다는 상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걸 알지만 상대는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 중국은 미국에 맞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나 수틀리면 언제든 무역보복에 나선다. 국제무대에서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국 정부가 우군으로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 됐다. 비위나 부도덕이 횡행했던 정경유착이 아닌 투명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가까워지는 게 모두에게 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만난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본인은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됐다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걸 더욱 분명히 얘기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정국이 어수선해지면서 기업과의 소통이 소원해진 점을 아쉬워하는 고위공무원도 있었다. 공직 곳곳에는 여전히 선의가 있다는 얘기다. 민관이 손을 맞잡아도 헤쳐나가기 쉽지 않은 난세라는 걸 우리는 안다. 경제를 외면한 정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