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던 29일 오전 9시를 갓 넘긴 시각,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착륙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추락하면서 울타리 외벽을 들이받은 것. 꼬리 일부분만 제외하고 기체가 전소되면서 큰 인명피해를 냈다. 생존자 2명이 구조되긴 했으나 이들을 제외한 탑승객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는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참사로 남게 됐다. 희생자 가운데 특히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연말을 맞아 태국 여행을 다녀온 가족 단위 탑승객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비보를 듣고 임시안치소가 설치된 무안공항을 찾은 유가족들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시각각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의 이름이 스피커를 통해 울릴 때마다 유가족들의 탄식과 오열이 무안공항 대합실을 가득 채웠다.
현장에서 구조 및 수습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사고 원인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처음에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에 따른 엔진 폭발과 랜딩기어(비행기 바퀴 등 이착륙에 필요한 장치) 오작동 문제가 언급됐다. 착륙 전 관제탑에서 ‘조류 충돌’ 경보를 발령했고 2분 뒤 조종사가 메이데이(조난신호)를 보낸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류 충돌과 랜딩기어 오작동, 착륙 실패엔 직접적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온라인상에서는 사고기 조종사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항공기 사고의 경우 통상적으로 진상 규명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번에도 비행자료기록장치(FDR)가 일부 손상된 채 수거가 된 탓에 블랙박스 해독 작업에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우려된다.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가 온전히 수거된 점은 다행이지만 두 개의 블랙박스가 모두 있어야만 원인 규명이 가능하다. 여기에 기체 결함이나 정비 불량 등에 대한 조사도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번 사고는 12·3 계엄 사태 이후 국내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생해 국민들의 충격이 배가됐다.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게시물들로 뒤덮였다. 대통령 탄핵 등을 놓고 사회적·정치적 분열 우려가 나오는 와중에 대형 인명 사고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은 말 그대로 우울한 12월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12월, 그리고 2024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통령과 국무총리,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공석인 국정 공백 상황에서 국가적 대형 재난을 마주한 작금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섣부른 추측이나 음모론은 지양해야 할 시점이다.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2차 피해는 금물이다. 사고 원인과 책임자 처벌도 급하지 않다.
사고를 수습하고,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참사와 관련해 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더 나아가 범정부 차원의 물적·인적 지원이 시급하다. 그것만이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 그리고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병돈 사회부 사건팀장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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