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한 지배구조가 증시 저평가 원인
일반 주주 보호위한 '상법 개정' 부각
2399.49. 올해 마지막 코스피 종가다. 결국 2400선도 지키지 못한 채 한 해를 마무리했다. 지난 1월2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중 자본 시장 규제 혁파를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투자심리는 살아났었다. 정부의 밸류업 추진에 힘입어 코스피는 상반기에 2800선을 돌파하는 등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7월 이후 연속 하락세를 보이더니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언과 탄핵정국 돌입으로 끝내 2400선이 무너졌다. 국내 증시가 6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한 것은 2000년 IT 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차례뿐이다. 올해 하반기 왜 이렇게까지 내리막길을 걸었을까.
제왕적 지배주주가 원인이다.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거수기라는 오명이 따라붙을 정도로 제대로 된 기능을 행사하지 못한다. 지배주주의 리더십에 반기를 드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그 결과 회사의 의사결정은 일반주주보다는 지배주주의 이익에 맞춰지는 일이 반복돼 왔다.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돈되는 자회사를 이리저리 뗐다 붙이거나,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유상증자에 나선다. 중복상장 비율도 18.43%로, 미국(0.35%)과 일본(4.38%)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주주 전체의 이익보다 지배주주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행위가 만연하기에 ‘저평가’는 불가피하다.
11월 들어선 제왕적 대통령에 의해 증시가 더 고꾸라졌다. 비상계엄과 이어진 탄핵 사태는 1년여간의 밸류업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배당 우수 기업 주주에게 분리과세로 배당소득세를 감면하고 주주환원을 늘린 기업에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는 정부 세제 개편안도 처리가 무산됐다.
대통령이 문제라고 하면, 문제 있는 국가원수를 둔 다른 나라 증시는 왜 잘나가는지를 이유로 들어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제왕적’이기 때문이다. 현행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잘못된 리더십이 자리하면 권한 집중은 정치적 불안을 야기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킨다. 이 같은 자본 시장을 어느 투자자가 믿고 신뢰하며 투자할 수 있겠는가. 국민 전체의 뜻보다 권력자의 뜻이 우선인 나라의 시장이 역동적이겠는가. 문제 있는 리더십을 시스템적으로 견제, 교체, 보완할 수 없으면 ‘투자 취약국’ 신세에 따른 저평가 업보는 감당해야 한다.
이같이 제왕적 지배주주와 제왕적 대통령의 컬래버레이션이 현재의 과도한 디스카운트를 만들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밸류업 추진 동력은 잃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저평가 해소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정부에 잘못된 리더십이 자리 잡으며 그 결과가 시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깨달았다. 한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재검토하고, 더욱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권력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 제왕적 지배주주 이슈가 부각되면서 소액주주의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개정이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재편과 한화에너지의 ㈜한화 공개매수, 고려아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등 대기업의 자본거래 사례들도 주주 보호 강화를 명시하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 간의 이해 충돌을 최소화하고, 모든 주주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취약한 기업지배구조(Poor Governance)’에서 벗어나야 고질적인 저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선애 증권자본시장부장 ls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