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따른 탄핵 사태는 대한민국 정치가 아예 통째로 사법부에 포위되는 상황을 야기하고 말았다. 심지어 사법적 판단의 결과 자체가 아니라 판단에 다다르는 속도에 따라 시민들의 선택지가 재단될지도 모르는 ‘카운트다운 정치’ 비슷한 상황이 초래됐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탄핵 인용을 전제로 하는 차기 대선 시계는 늦어도 내년 8월께로 맞춰졌다. 헌법재판소법이 탄핵심판의 결론을 180일 이내에 내리도록 규정하고 대통령이 파면되면 그때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해서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기괴한 선언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수사와 기소, 이어질 법원 심리에 선행하는 헌재 심판 과정에서 가능한 한 치열하게 정치적 투쟁을 벌여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윤 대통령이 헌재 심판의 원리나 취지와는 무관하게 가장 미세한 단위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한편 내란의 정의와 내란 의도 존부의 판단 기준 등에 대한 법리적·정치적 해석을 물고 늘어지는 기교를 통해 사태를 시간 싸움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내고 당을 접수한 국민의힘 친윤 주류 입장에서도 헌재의 시간을 되도록 길게 늘이는 게 급선무로 떠올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재판 지연을 이유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손가락질하던 입장에서, 이 대표를 막아서기 위해 그의 전술 아닌 전술을 차용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시간 싸움의 카운터파트격인 이 대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기 시작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을 앞두고 변호인 선임계를 내지 않는 동시에 소송기록 접수 통지조차 받지 않는 건 소송절차의 작동 자체를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뤄보겠다는 꼼수다. 이렇게 하면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대략 2개월 안팎을 심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확보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는 이렇듯 불과 몇 달짜리 시간싸움에 내몰려야 하는 정도로 혼탁해졌다. 이 대표가 적합도 1위를 고수하고 한 전 대표가 뒤쫓는 패턴이 고착화된 차기 대선 여론조사 결과의 이면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호감 수치도 자리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안을 찾기 어렵거나 대안의 모색을 차단하는 고약한 정치환경은, 시간을 넉넉히 갖고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수많은 이들에게 일그러진 선택지를 받아들라고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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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좋든 싫든 사법의 시간이다. 사법이 정치를 조금이나마 교정할 수 있다면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탄핵심판을 하는 헌재는 헌재대로, 이 대표 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은 법원대로 원칙에 따라 최대한 신속하고 단호하게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정돈된 선택지와 판단의 기준을 제시받을 권리가 시민들에게는 있다. 반대로 어느 한 군데라도 균형을 잃거나 그런 것으로 의심받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앞뒤 없는 증오의 정치, 그래서 갈 데까지 가고 마는 정치,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배반하는 정치 아닌 정치는 반복재생된다.
김효진 전략기획팀장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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