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국회에서 비상계엄 전후 상황 설명
국무위원 모두 반대했지만, 尹 계엄 강행
박범계 "탐욕·야합" 비난…韓 "위기 수습"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회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모든 국무위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 대통령이 계엄을 강행한 것이지만,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연신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야당은 '계엄에 동조한 공범'이라고 거칠게 공세를 펼쳤고, 한 총리는 위기 국면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덕수 총리는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 관련 긴급현안질문'에서 "지난 3일 저녁 대통령실 도착 이후 (계엄 계획을) 인지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대통령의 그런 의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며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또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직전 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계엄에 찬성한 국무위원이 있었냐고 묻는 말에 "전원 다 반대하고 걱정했다"고 답했다. 당시 회의에는 한 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 국무회의 의결 정족수에 해당하는 11명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국무위원 모두 계엄에 반대했지만, 윤 대통령은 강행했다.
한 총리는 '반대 사유'를 묻는 말에 "대한민국 경제, 그리고 신인도의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고 국민들의 수용성도 없을 거라고 말씀드렸다"며 "국무회의 자체가 많은 절차적·실체적 흠결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국무회의가 소집된 배경에 대해서는 "절차적 흠결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국무위원이 모여 반대하고 막고자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설명에도 야당 의원들의 강공이 이어졌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이제 와서 윤석열의 쿠데타를 막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건 참으로 비겁하다"며 허리를 굽혀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한 총리는 허리를 네 차례나 90도 굽혀 사죄의 뜻을 표했고, 뒤에 배석해 있던 국무위원들도 모두 일어나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다만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만하라'고 항의했고, 야당 의석에선 '부끄러운 줄 알라'며 고성이 오갔다. 국무위원들을 거듭 호통친 서 의원은 "윤석열은 언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며 "당장 직무를 정지시키고 토요일날(14일) 탄핵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신 사죄하던 한 총리가 야당 의원의 지적에 반박하는 상황도 있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한 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한한 야합'을 통해 연성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앞서 한 총리와 한 대표는 지난 8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여당이 국정을 함께 챙기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 총리는 "모든 국무위원과 공직자는 국민의 뜻을 최우선에 두고 여당과 지혜를 모아 국가 기능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별도 담화문을 통해 "대통령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챙길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국정에서 물러나되, 정부(한 총리)와 여당(한 대표)이 국가 기능을 유지하겠다는 것을 '탐욕스러운 권력 추구'라고 한 것이다. 한 총리는 "한국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이뤄지는 나라"라고 반박했다. 이후로도 박 의원은 질의 과정에서 "무섭죠" "정신이 왔다 갔다 하나" 등 다소 거친 언사를 쏟아냈고, 한 총리가 "인간적으로 모욕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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