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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트렌드 2024]옴니보어 시대, 당신의 소비자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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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 나이 20~50 다양
여성 스포츠 관람객 확 늘고
젠더리스 패션 인기 높아져
연령·직업 등 시장세분화보다
취향·상황 통해 타깃 '추론'을

[최지혜의 트렌드 2024]옴니보어 시대, 당신의 소비자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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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신청한 50대 부장님, 스마트스토어로 용돈을 버는 고등학생, 주말의 풋살 경기만 기다리고 사는 30대 여성, 유튜브의 추천제품을 구매하러 다이소를 들르는 자산가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졌다. 옴니보어(omnivore)란 사전적으로는 잡식성(雜食性)이라는 의미이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어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만의 소비 스타일을 가진 소비자가 증가하는 트렌드를 옴니보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옴니보어 현상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연령에 따른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키즈카페, 초등학교 입학식 등에 참여하는 부모들의 나이가 20대부터 50대까지 온통 뒤섞이고 있다. 출산을 늦게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놀랐다", 혹은 반대로 "내가 가장 어린 사람이라 놀랐다"는 반응이 부지기수다. 실제로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키즈카페를 이용한 사람들의 연령대 비중을 살펴본 결과, 2024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2년 동안 20대, 30대는 각각 1.7%, 6.7% 줄어든 반면, 40대와 50~60대는 각각 6.9%, 1.5% 증가했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 또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혹은 퇴직 후에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은 물론, 업을 변경하고자 학부 과정에 새로 등록하는 30대를 만나는 것도 놀랍지 않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대학들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23년 현재 고령인구의 비율이 22.6%로 고령화에 직면한 부산에 있는 영산대학교는 시니어층의 수요를 반영하여 시니어모델학과를 열기로 했다. 단기 프로그램이 아닌 4년제 최초로 개설된 학사과정으로 모델이 되기 위한 실습 교육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같은 교양 수업을 포함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인구학적 요소인 성별에도 옴니보어 트렌드가 침투하고 있다. 흔히 스포츠 관람을 즐기는 사람은 남성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요즘 야구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풍경이 사뭇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대한민국 프로야구리그(KBO)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프로야구 티켓 구매자 중 54.4%가 여성이었으며 이는 지난해보다 3.7%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패션으로 넘어가보자. 몇 년 전부터 ‘젠더플루이드’ 혹은 ‘젠더리스’ 패션이 떠오르면서 남성 연예인이 흔히 여성용이라 생각하는 스커트, 꽃무늬 제품, 클러치 등 소품을 착용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운동의 인기에 힘입어 여성들 사이에서 ‘블록코어’ 스타일이 사랑받으며 젠더플루이드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블록코어는 영국에서 사내를 뜻하는 ‘Bloke’와 평범한 스타일을 의미하는 ‘Nomcore’를 더한 말로 축구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입고 다니는 남성들처럼 스포츠 유니폼 스타일로 꾸민 패션을 의미한다.


패션 회사들은 이러한 소비자 변화에 대응하여 성별의 경계를 없애고 있다. 예를 들어 브랜드 ‘던스트’는 품목에서 ‘남성 재킷’ ‘여성 셔츠’ 등 성별 구분을 지우고 그 대신 XS, S, M, L, XL 등으로 사이즈를 구분한다. 브랜드 측에 따르면 오버핏을 원하는 여성은 라지(L) 사이즈를, 슬림핏을 원하는 남성은 스몰(S)이나 미디엄(M) 사이즈를 입게 되면서 성별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설명이다.


흔히 시장 분석을 할 때 연령·성별·직업·거주지역·교육수준·소득 등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타깃 소비자집단을 좁혀나가는 것을 시장세분화(segmentation)라 하고, 그 결과 분류된 각 집단을 세그먼트(segment)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X·밀레니얼·Z·알파 등 자주 사용하는 ‘세대’는 소비자를 분류하는 대표적인 세그먼트의 하나이다. 세그먼트 개념은 지금까지 마케팅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시장세분화 작업을 중시해 온 이유는 세그먼트에 따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가치관·취향 등이 비슷하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의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되면서 집단의 차이는 줄어들고 개인의 차이는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옴니보어의 시대에 세그멘테이션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신혼살림에 적합한 냉장고를 마케팅한다고 가정해 보자. 예전 같으면 혼수를 장만할 확률이 가장 높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 세그먼트를 타깃팅하고, 이 연령대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을 선정해,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채널에 광고를 집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품과 상품의 주요 고객층, 주요 고객층이 이용하는 광고 및 판매 채널이 고리처럼 엮여있던 안정된 시장의 접근법이다.


옴니보어 시대의 잠재고객은 인구학적 세그먼트로 쉽게 정의되지 않으며 특정 채널로만 한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소비자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기 위해 라이프스타일·가치·취향·기분·상황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활용해 소비자를 면밀히 정의해야 한다. 혼수로 냉장고를 장만할 소비자를 찾으려면, 연령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 지표가 필요하다. 예컨대 청첩장을 주문한 사람, 결혼 준비 커뮤니티에 새로 가입한 사람, 입주 이사를 알아보는 사람 등의 기준으로 타깃을 ‘추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인 인구학적 기준의 세그먼트 대신 소비자가 남긴 흔적을 통해 타깃을 찾아가는 개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소비자는 더이상 전형적이지 않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상식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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