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효율성 겸비한 SLM
네이버 등 한국어 특화 버전
글로벌 활용 데이터 부족해
반도체 등 산업별 적용 필요
인공지능(AI) 기술은 지난 몇 년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며 산업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특히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LLM)의 등장으로 텍스트 생성, 번역, 데이터 분석 등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학습하기 위해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 자원과 엄청난 에너지 소비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동시에 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업과 국가를 제한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소형 언어 모델(Small Language Model·SLM)이다. SLM은 대규모 모델에 비해 훨씬 적은 매개변수를 가지면서도, 특정 작업에 특화된 효율성을 제공한다. 클라우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로컬 기기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으며 데이터 프라이버시 보호와 에너지 절감에도 기여한다.
미국에서는 SLM이 대규모 모델과 하이브리드 형태로 결합돼 활용되고 있다. 구글은 모바일 기기에서도 작동 가능한 소형 모델을 개발해 클라우드 의존도를 줄이고 실시간 응답성을 높였다. 오픈AI는 챗GPT의 경량화 버전을 연구하고 있다. 유럽은 유럽연합 개인정보보호규정(GDPR)과 같은 강력한 데이터 보호 규제를 준수하면서 SLM을 활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정부의 강력한 AI 투자 아래 SLM이 스마트 제조와 같은 산업 분야에 맞춤형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 SLM 도입에 있어 고유의 강점을 지니고 있는 가운데 만만찮은 도전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한국은 빠른 인터넷 인프라와 높은 기술 적응력을 바탕으로 AI 기술 발전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네이버의 ‘HyperClova X’는 한국어에 특화된 SLM으로, 글로벌 모델에 비해 높은 언어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카카오 또한 소형 언어 모델을 활용한 맞춤형 챗봇과 검색 서비스를 개발해 국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은 SLM 개발에 있어 몇 가지 제약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어 데이터의 부족이다. SLM은 특정 언어에 최적화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 학습이 필수적이지만, 한국어는 글로벌 차원에서 활용되는 데이터양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이 미흡하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국내 시장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글로벌 사례에서 더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 미국의 하이브리드 솔루션 사례나 유럽의 규제 친화적 AI 개발 방식을 참고해 한국만의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스마트 제조, 콘텐츠 분야에서 SLM을 산업별 맞춤형으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중국이 산업 데이터를 로컬에서 처리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한 방식과 유사하게 접근할 수 있다. 동시에 AI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SLM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을 촉진하고 글로벌 진출을 위한 네트워크를 제공해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을 겸비한 SLM은 글로벌 AI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며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트렌드와 로컬 특성을 연결하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SLM은 작지만 강력한 기술로, 한국과 세계가 AI의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손윤석 미국 노터데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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