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시작된 자료 요구는 업무를 할 수 없는 수준의 분량이었어요. 그런데 질의 내용을 보면 자료를 읽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더군요."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준비에 바친 시간과 늦은 저녁까지 대기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죠."
최근 연락을 나눈 한 공공기관, 그리고 민간 기업 간부가 국정감사와 관련해 불만스레 쏟아낸 말이다. 또 다른 기업 임원 입에선 "3분기 대한민국의 생산성에 국감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반농반진의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긴 설명을 체념한 자의 자조 섞인 멘트였다.
종으로 횡으로 이어지는 의원실의 방대한 자료 제출 지시, 상임위별로 중복되는 요청에 가까스로 응한 결과는 많은 경우 허탈하다. 어떤 증인은 증언이 아니라 의원 본인이 하고 싶은 정치적 발언을 끝끝내 하기 위해 세워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국감 시기 국회는 정치 무대가 아니라 나라 살림과 행정을 감찰하는 현장이 된다는 것을 잊은 걸까.
반대로 일부 증인이나 참고인, 피감기관 관계자들의 돌발행동도 가관이다.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은 소속사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을 증언하기 위해 참고인으로 온 뉴진스 멤버 하니와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 사장이 불려 나온 데에는 한화오션의 노동자 사망사고라는 무거운 배경이 있다는 점에서 비난이 거셌다. 한화오션의 산업재해 승인 사례는 전체 노동자의 1.3%(민주노총 발표, 8월 기준)로 동종업계 현대중공업(1.0%), 삼성중공업(0.7%)보다 높다는 명백한 문제도 집계된 터였다.
같은 날 최민희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국회에 출석하는 하니의 사진을 출입문 현장에서 찍은 데 이어 따로 만났다는 것으로 여야는 불필요하게 긴 설전을 했다. 유명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선 곳은 콘서트장도 팬사인회장도 아닌 국감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걸까.
여야 의원들의 감정싸움이나 증인의 ‘태도’ 탓에 정회가 반복되는 상황도 답답한 노릇이다. 앞서 최 위원장과 하니의 만남에 대한 여야의 말다툼은 결국 정회로 이어졌다. 이날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는 "피감기관장이 죄인이냐"고 항변하며 피식피식 웃거나 날 선 반응을 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태도에 "깐족댄다"는 야당 의원들의 고성이 오갔고, 그 끝은 정회였다. 오 시장은 시정과는 다소 무관한 이 날 해프닝 영상을 "민주당 의원들 억지에 ‘팩폭’을 날렸다"는 제목을 달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로 만들어 올렸다.
이 씁쓸한 전개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한 국감의 풍경이다. ‘너’, ‘당신’ 따위의 멸칭, "지금 뭐라고 했어", "얻다 대고 소리를 질러" 같은 고정 멘트가 ‘국회 모욕’이라는 방패 뒤에서 튀어나온다. 어떤 증인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비아냥대거나 비속어를 내뱉었다. 모욕감은 이런 술자리 싸움판 같은 장면을 국정감사라는 이름으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느낄 감정이다. 국감에 임하는 모두에게 그 시간(T), 장소(P), 상황(O)에 걸맞은 태도를 바라는 것은 과욕일까.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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