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사모펀드는 ‘야만인들’일까](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3080314582429135_1691044526.jpg)
이 책 거론하면 사모펀드 운용사(PE)들은 싫어하겠다. 일단 제목이 자극적이다.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 둘째, 식상하고 도식적이어서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발생하고 업계가 시끄러워지면 이 책은 단골로 등장한다. 지금 기자가 또 끄집어낸 것처럼. 그리고 비판의 화살은 사모펀드로 향한다. ‘야만인들’이라는 화살촉을 달고.
이 책은 1988년에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미국 담배·식품회사 RJR나비스코를 적대적 인수합병(M&A)하는 과정을 담았다. 저자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들의 탐사보도가 압권이다. 엄청 두꺼운, 이른바 '벽돌책'인데, 투자금융(IB) 업계에선 ‘필독서’ ‘바이블’로 꼽힌다.
최근 경제계의 핫이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얘기하려고 앞말이 길어졌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대주주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또 다른 대주주인 현 고려아연 경영진과의 경영권 분쟁이 치열하다. 예상대로 ‘쩐(錢)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이기든 내상이 불가피하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다.
MBK를 나쁘게 보는 쪽은 ‘야만인들’이라 비판하고, 좋게 보는 쪽은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라고 거든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들 돈 끌어모아 돈 될 기업에 투자하고, 밸류업 후 투자자들에게 이익 돌려주는 게 비즈니스 모델이다. 여기에 머리가 아닌 가슴이 끼어들 틈은 없다. 그러니 감정 섞인 단어들로 도배된 여론전이 사태의 본류를 바꿀 순 없다.
“졸면 죽는다”. 지금이 딱 그런 때다.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외계인 회사’라 불리던 인텔이 흔들리고, 천하의 삼성전자가 휘청거리는 시대다. 이런 때 ‘형제의 난’ ‘모자의 난’ ‘동업자의 난’에 한눈 팔린 한국의 대기업들은 조는 걸 넘어 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기업들을 돈 냄새 잘 맡는, 그리고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을 굴리는 사모펀드들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재무 악화 기업에 투자하거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지원하는 기존 시장은 성에 차지 않고, 시장도 포화됐기에 더 그렇다. 사모펀드 업계의 맏형 MBK가 앞장섰다. 비록 실패했지만, 이미 지난해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시도로 발톱을 드러냈다. 한국앤컴퍼니, 고려아연 두 건 모두 MBK 회장인 'MBK'(Michael Byungju Kim, 김병주)가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모펀드의 한국 대기업 공격은 이제 봇물 터졌다고 볼 수 있다. '큰 장'이 서기 일보 직전이다. 가족들끼리 경영권 다툼하고, 사업 확장한다면서 지인 기업에 배임성 투자하고, 개인주주 무시하며 대주주에 과다 배당하는, 이른바 ‘졸고 있는 기업들’을 사모펀드들은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그렇다면 사모펀드는 ‘야만인’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인수 후 연관기업 인수합병(볼트온, volt on), 비핵심자산 매각(커브 아웃, carve out) 등을 통해 밸류업에 나서는 ‘문명인’이 있는가 하면, 핵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회사 등골 빼먹는 ‘야만인’도 있어서다. 부디 MBK를 필두로 한 사모펀드들이 후자로 퇴행하지 않길 바란다.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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