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법 용어 통일해야 정확한 이해 가능”
국제 분쟁이 점차 다양화·복잡화되는 가운데 현직 법관들이 외국 법원이나 국제기구의 한국어 표기법을 통일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논문이나 법조 관련 문서, 언론 기사 등에서 외국 법원 등의 표기가 각기 다른 경우가 있어 통일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이 같은 기준 제시를 반기는 목소리가 높다. 가이드라인에는 해외 법원이나 국제기구의 시스템에 대한 소개도 함께 수록돼 있어 그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에 더욱 힘이 실린다.
국제분쟁해결시스템 연구회(회장 노태악 대법관)는 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 루비홀에서 ‘새로운 국제 지식재산(IP) 분쟁 해결 시스템 구축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외국 법원 및 사법관련 국제기구 번역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가이드라인 2024년 판 제작에는 노태악 집필 위원장 외에 집필 팀장인 김광남(44·사법연수원 36기) 서울고법 고법판사 등 집필진 13명과 편집자 1명 등 14명의 법관이 참여했다.
독일의 최고 법원(Bundes-verfassungsgericht)은 통상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아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한국의 헌재는 사법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헌재와는 역할이 다르다. 연구회는 이러한 독일 법제와 법원의 구조, 심급에 대한 설명과 함께 독일 최고 법원을 ‘독일 연방 헌법 법원’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용어 번역에서 오는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 독일의 최고 법원(Bundesverfassungsgericht)의 경우엔 사법부에 속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재판소’ 대신 ‘법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미국의 경우, ‘U.S. Supreme Court’는 ‘미국 연방대법원’이지만 뉴?욕주 법원의 ‘The Supreme Court’는 ‘지방법원’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두 ‘Supreme Court’라는 표현이 담겼지만, 전혀 다른 번역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3심을 담당하는 ‘最高裁判所’의 경우에는 ‘최고재판소’로의 번역을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최고재판소를 ‘일본 대법원’으로 표기하기도 하지만, 한자 표기를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일본 지재고재로 불리는 ‘知的財産高等裁判所’는 현재 한국에서 ‘지적재산권’이 아닌 ‘지식재산권’이라는 표현이 상용화되어 있는 만큼 ‘지식재산고등재판소’로 번역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법원 내부에서도 통일된 해외 법원 표기법이 없어 문헌마다 표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중국 ‘地方各級人民法院’의 경우 2010년 법원행정처가 ‘세계의 법원과 사법제도’에서 ‘각급 지방인민법원’으로 옮겼으나, 사법연수원에서는 페이지에 따라 ‘각급 지방인민법원’, ‘지방 각?급 인민법원’, ‘각급 인민법원’이라고 혼용하기도 했다. 연구회는 이 표기를 ‘지방 각급 인민법원’으로 번역하기를 제안했다.
연구회는 외국 법원 시스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번역의 중요성도 커지는 상황인 만큼 미국, 중국, 영국, EU, 국제기구, 프랑스, 독일, 일본, 싱가포르, 유럽통합특허법원(UPC), 국제중재기관, 국제상사법원의 시스템 소개와 함께 번역 가이드라인을 담아 소개했다.
노태악 위원장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새로운 법원 또는 국제적 분쟁 해결 기구 설립이 가속화되는 현실에 맞춰 외국 법원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르게 번역하는 것은 반드시 먼저 풀어야 할 과제”라며 “국내 법률 문헌에서 외국어로 표기된 해외법원과 국제기구 등을 다양하게 번역해 사용하고 있는데 일부 번역의 경우 일본식 번역 투의 용어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사용하거나 독자들에게 해당 법원의 실질적인 역할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여지를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번역으로 인한 혼란을 다소나마 예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수연, 홍윤지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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