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눈길을 끈 재계 소식이 있다. ‘효성가(家) 둘째, 공익법인 설립해 상속재산 출연…공동상속인 동의’.
공동상속인인 형(조현준 효성 회장)·동생(조현상 HS효성 부회장)과 경영승계 문제로 갈등 중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관련 기사다.
일부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상속세를 감면받기 위해 이번 일을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는 “공동상속인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상속세를 감면받지 못해도 재단은 계획대로 설립하겠다”고 해명한 바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3월 별세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으로부터 효성티앤씨 지분 3.37%, 효성중공업 1.50%, 효성화학 1.26%를 상속받았다. 상속세 부담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공익법인에 출연해도 상속증여세 면제한도 문제로 곤란을 겪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2003년께 수원교차로 주식 90%(시가 180억원)와 현금 등 약 220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증여세와 가산세로 140억원을 부과받은 수원교차로 창업주 고(故) 황필상 박사의 사례, 2015년 오뚜기 주식 3만주(0.87%)를 복지재단·미술관·교회 등에 출연했다가 과거 다른 공익재단에 출연했던 오뚜기 주식 17만주(4.94%)와의 합산을 고려하지 못해 324억원의 증여세를 부과받은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공익법인에 대한 상속증여세 면제한도는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경우 출연 내국법인 주식의 5%, 일반 공익법인의 경우 10%, 자선·장학·사회복지 목적 공익법인의 경우 20%로 돼 있다. 문제는 이 한도가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이 없던 시기에 기업의 우회 지배 방지 목적으로 마련된 ‘오래된 옷과 모자’라는 점이다. 몸도 커지고(기부 규모), 머리도 커졌는데(기부 목적) 맞지 않는 옷과 모자를 억지로 입고 쓰라는 게 지금의 형국이다.
그러니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WGI)에서 한국의 순위는 지난해 79위다. 2013년 45위를 기록한 이래 10년간 내리막이다.
기부 활성화와 법 체계 정합성 확보 등을 위해, 그리고 제2·제3의 수원교차로·오뚜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익법인의 상속증여세 면제한도 상향을 적극 검토하는 건 어떨까.
구체적으로 공익법인(일반 공익법인이든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공익법인이든)이 출연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상속증여세 면제한도 15%, 행사하지 않을 경우 30%로 일원화할 것을 제안한다. 상호출자제한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경우 이미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한도가 15%이기에 법 체계 정합성을 고려해 거기에 맞추자는 것이다. 또 의결권 불행사의 경우 기업 우회지배 등 지배구조 왜곡 가능성이 없으므로 전향적으로 올려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기존에 재벌들이 기업 우회지배 목적으로 공익법인을 악용하는 등의 원죄가 있다. 사전통제를 완화하는 대신 재원 사용, 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 사후관리를 강화할 것도 제안한다. 공익법인은 기부 활성화와 건전한 가업승계의 요긴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재단 설립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발렌베리(스웨덴)·록펠러(미국)·폭스바겐(독일) 등이 그 표본이다. '한국판 발렌베리'를 꿈꾸는 건 너무 먼 얘기일까.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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