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영상 수백 개 만들고 거액 들여 책 구입
'위드후니' 가입자 총선 전보다 5배 늘어
'재명이네 마을'엔 다른 정치인들까지 글 올려
파란색 셔츠를 입은 이수인씨(51·남)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캐리커처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필통뿐만 아니라 사무실 곳곳에는 이 전 대표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지난 6월 14일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영락없는 이 전 대표의 팬이었다. 투자자문사를 운영하는 이씨는 이 전 대표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직접 꺼내면 안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라도 이 전 대표를 간접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말 그대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이 전 대표의 팬덤 활동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정치 관련 토론을 한다. 얼마 전에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민주당이 주창하는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해 토론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전 대표가 쓴 책도 300만원어치 사서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책을 살 때 돈이 아깝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전혀요!"
이씨는 온라인에서는 이 전 대표를 응원하는 유튜버로 활동한다. 올 2월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공개되는 건 부담스러워서 콘텐츠에 인공지능(AI) 목소리를 넣었다. 이미 영상을 394개나 만들었다. 이제 영상을 제작하는 건 '도사' 수준에 도달했다. 퇴근하고 15분이면 영상 하나를 만든다. 이씨는 자신이 올린 유튜브 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영상에서는 남성 AI 목소리가 "이재명이 두렵니? 이재명은 죄가 없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이씨는 "유튜버 활동은 단순한 정치 활동이 아니다. 나 자신의 만족과 연관 있다"고 말했다.
당원 가입 독려에 유튜버 활동까지…300만원어치 책 사서 나눠주기도
과거 투표 독려 활동 정도에 그쳤던 정치인 지지 활동이 이제 팬덤 현상으로 발전하면서 당원 가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팬덤은 팬 카페 '위드후니'에 모여서 당원 가입 운동을 펼쳤다. 지난 4월 10일 총선 전에는 1만8000명 수준이던 위드후니 가입자 수는 이달 24일 기준 9만671명으로 5배 늘었다. 사실상 정치 신인인 한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의 당원 투표에서도 62.69%의 득표율을 얻는 등 압승을 거뒀다.
이들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서 실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한 대표와 관련해 부정적인 글이 올라오면 반박하거나 긍정적인 글로 도배한다. 지난 6월 11일 황우여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2위 득표자가 대표 궐위 등에 대비하는 '승계형 지도체제'를 내세웠다가 한 대표 팬덤으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이들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서 "황우여는 물러가라, 2인 체제가 웬 말이냐" "(한 대표를) 못 잡아먹어서 떠들던 홍준표 대구시장, 조정훈 의원, 황 비대위원장 등은 왜 더불어공산당(더불어민주당을 경멸하는 명칭) 입법 독재에는 입을 닫냐"고 비난했다.
팬덤은 직접 길에서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등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난 6월 14일 서울 여의도역 3번 출구 앞. 10여명의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이 당원 가입 운동을 진행했다. 김연(67·남)씨 역시 여의도역 앞에서 조국혁신당 당원 가입을 홍보했다. 그는 조국혁신당을 위해서라면 말 그대로 몸을 바치는 심정으로 모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도 자신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사업체 업무를 보러 오전 9시에 출근했다가 당원 가입을 홍보하기 위해 여의도역으로 뛰어왔을 정도다. 김씨는 "인터넷을 잘할 줄 몰라서 댓글을 달거나 하지 않고 이렇게 발로 뛴다"며 "저는 죽을 때까지 어떤 정치적 직위를 받지 않고 뒤에서 조국혁신당을 돕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대표를 지지하는 순수성, 그것만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팬덤들, 팬카페서 정치인과 직접 소통…언론도 공격 대상
이재명 전 대표의 팬덤들은 이미 이런 과정을 넘어서서 정치인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팬 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이 전 대표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도 찾아와 자신의 의정활동을 보고하는 글을 올린다. 지난 16일 기준 양문석 의원은 올해 40개, 최민희 의원은 24개, 모경종 의원은 9개, 정청래·조정식 의원은 각각 2개의 글을 재명이네 마을에 게재했다. 최 의원은 올 5월 16일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자 재명이네 마을을 통해 "개표 결과에 저도 놀랐다"며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더 단단하게 단결해 함께 가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민주당의 중심은 당원이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팬덤들은 "22대 국회 시작이 이 지경인데 어떻게 믿어야 하나" "당심과 민심을 무시한 의원들은 기억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팬덤의 정치적 활동은 당내뿐만 아니라 언론으로도 향한다. 위드후니, 재명이네 마을 모두 언론 기사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한 대표, 이 전 대표와 관련된 언론 기사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정치인을 비판하는 기사에 댓글을 달며 공격하기도 한다. 지난 22일 재명이네 마을에서 한 가입자가 이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90%를 넘는 득표율을 얻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며 "악플 밭"이라고 글을 올렸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ㅇ"라는 댓글을 달았다. 해당 기사에 가서 이 전 대표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거나 부정적인 댓글을 신고하는 작업을 '완료'했다는 의미다. 위드후니에서도 팬덤들은 언론 기사를 공유하며 댓글 작업 등 화력을 요청했다. 지난 6월17일 한 대표의 팬덤들은 신평 변호사가 한 대표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비판한 내용의 기사를 공유했다. 팬덤들은 "댓글 완료"라며 댓글 작업을 했다고 보고했다.
정치인 팬덤 현상은 막을 수 없지만 정치인들이 팬덤의 과한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온라인 등 접근이 쉬워진 뉴미디어 시대에서 팬덤은 불가피하고 행동주의 지지층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면서도 "최근 혐오형 팬덤이 등장하고 있는데 정치 지도자는 이들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견제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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