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믿느니 개를…’ 등 원색 표현
길 양쪽에 빼곡, 한사람이 10개도
구청도 경찰도 단속 않고 떠넘기기
‘서초를 사법정의 허브로’ 무색
‘썩은 판사·검사·변호사를 구속하라’, ‘검찰하나회 표적수사 규탄한다’
서초동 법조타운이 불법 현수막으로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신고 규정을 위반한 현수막이 난무하고 있는데도, 단속과 철거 권한을 가진 구청과 경찰은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실효성 없는 말만 되풀이하며 방치하고 있다.
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 사이의 법원로와 대법원 앞. 판사와 검사를 비난하는 현수막은 물론 특정인을 사기꾼으로 지칭하고 원색적인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즐비하다. 200m 남짓한 거리인 법원로에 35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고, 이 중에는 정치인의 사진과 모욕적 표현을 담은 현수막까지 있었다.
대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1인 시위자가 대법원 정문 앞에서 10여 개 현수막을 3년 이상 게시한 적도 있다. 일부 현수막에는 대법관 사진과 함께 ‘역사의 죄인들’, ‘판사를 믿느니 개를 믿겠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불법 현수막 때문에 법원·검찰 관계자는 물론 법조타운의 변호사와 직원들까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대검의 한 검사는 “난무하는 불법 현수막으로 대법·대검 청사 앞은 아예 공식 시위 공간으로 인식될 정도다”라고 전했다.
이들 현수막은 상당수가 불법이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현수막은 미리 구청에 신고하고 정해진 장소와 규격을 지켜야 한다. 구청과 경찰에 따르면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걸리는 현수막은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도 구청, 경찰은 손을 놓고 있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법원 주변의 소규모 시민들이 불법 현수막을 게시할 경우 자진 철거를 유도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집회·시위를 진행하는 중에만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고 야간이나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철거가 가능하기에 불법 현수막으로 판단되는 경우 구청에서 조속히 철거해 주기를 바란다”며 ‘철거는 구청의 소관’임을 강조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집회 현수막은 집회 신고자가 실제 집회장 내에서만 현수막을 게시해야 하는데 종료 후에도 현수막을 제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집회자가 시위 장소를 이탈했는지 일일이 판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집회를 하지 않은 현수막에 관해서는 순찰을 강화해 경찰서와 협업 체계를 구축해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국민 청원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주장을 펴는 방법도 많은데 법원, 검찰 등 국가기관의 공무나 변호사 등의 업무 수행에 지장을 주는 현수막까지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서초구가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를 ‘아시아 태평양 사법정의의 허브’로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무법, 불법을 방치하면서 어떻게 정의의 허브를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비판의 소리가 높다.
안현, 이순규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