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총선을 앞두고 정치발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가 이번에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과도한 재정적자에 따른 경고장을 받았다. 현재 지지율 1~2위인 극우정당과 좌파연합 모두 재정지출 확대를 예고하고 있어 에마뉘엘 마크롱 행정부의 정치적 리스크가 더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U집행위원회는 19일(현지시간) 프랑스를 비롯한 벨기에, 이탈리아, 헝가리,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총 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EU이사회에 '과다 재정적자 시정 절차(EDP)' 개시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EDP는 방만한 재정을 운용하는 회원국에 EU 규정에 따른 예산 수정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벌금 등의 제재를 부과하는 제도다. EU는 한 회원국의 재정이 악화할 경우 다른 회원국에도 여파를 미친다는 점에서 각국의 공공부채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60%, 3%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인구 고령화, 추가 국방비 지출, 기후변화 관련 지출 등으로 유로존 국가들이 "상당한 재정부담"에 직면해 있다며 부채 축소를 촉구했다. ECB는 이들 국가가 재정적자를 GDP의 평균 5%포인트 축소할 것을 권고했다. 이 경우 7200억유로 상당의 지출을 축소하거나 추가 세입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날 EU집행위의 경고 명단에 오른 7개 회원국 중 프랑스가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정치적 혼란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극우 정당에 참패하자, 즉각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0일과 내달 7일 조기 총선을 깜짝 발표했다. 이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 대신, 극우정당 또는 좌파연합이 프랑스 의회 권력을 잡게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총선을 2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직면한 문제 리스트가 하나 더 추가됐다"면서 "정치적 혼란의 순간에 프랑스의 취약한 재정을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재정 정상화를 요구했던 마크롱 대통령으로선 의회 권력을 빼앗긴 상태에서 추진력을 얻기 힘들 전망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기준 GDP의 5.5%로, 이탈리아에 이어 유로존에서 두 번째로 가장 높았다. 공공부채는 무려 110%를 웃돌았다.
현재 싱크탱크 브뤼겔은 EU집행당국이 프랑스에 올해 지출을 약 157억유로 축소하라고 지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관건은 극우 또는 좌파연합과의 동거가 유력한 프랑스가 이러한 EU의 예산안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여부다. 지지율 1위인 극우정당 국민연합(RN)과 RN의 집권을 막기 위해 연대한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FP)은 마크롱 행정부의 정책기조에 반발하며 재정지출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상태다.
더욱이 이들은 EU의 예산지침 자체를 강하게 비판해오기도 했다. NFP의 경우 EU의 예산규정을 거부할 것이라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 루치노 펜치 브뤼겔 연구원은 "RN과 NFP의 공약은 지출을 축소하고자 하는 브뤼셀(EU당국)의 요청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면서 "우리가 피하고 싶었던 일, EU 집행위와 국가 간 정면충돌로 이어질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파 라만 역시 리포트를 통해 "극우 또는 좌파연합 정부는 (프랑스의) 재정적자를 확대할 것"이라며 "어느 것도 재정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프랑스 투자자들까지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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